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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피플] 동아대 로스쿨 석좌교수 김신 전 대법관

“인생 2막은 고향서 후학 양성 힘쓰겠다”

  • 국제신문
  • 임은정 기자
  •  |  입력 : 2018-09-02 19:48:4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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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법조인 길 걸어오다
- 부산에 기여하고 싶어 낙향
- 거액 수임료 대신 대학 선택
- 이번 학기부터 강단에 서

“퇴임 뒤 어떻게 살까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법조계뿐 아니라 많은 분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지 않습니까. 저만이라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인생 후반을 부산에 기여하며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동아대에서 연락이 와 흔쾌히 수락했어요. 그러고 나니 다른 쪽에서도 연락이 오고 그럽디다, 허허.”

   
동아대 석좌교수로 부임한 김신 전 대법관은 “고향 부산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인생 2막을 설계하느라 하루하루가 기쁘다”고 말했다. 서정빈 기자
이달부터 고향 부산에서 후학을 양성키로 한 김신(61) 전 대법관이다. 지역 법관(향판) 출신으로 대법관직을 수행하다 지난달 1일 퇴임한 그는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국제신문 지난달 27일 자 8면 보도)했다. 부산고와 서울대를 졸업,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 전 대법관은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 판사,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울산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하고 2012년부터 6년간 대법관을 지냈다. 떠나 있던 세월만큼 그리움이 커졌을까. 퇴임식 후 아내와 함께 바로 부산으로 내려와 집을 알아보고 이사를 하느라 바빴다고 웃었다.

고위 법관들이 퇴임 뒤 변호사 개업을 해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경우가 허다한데 개업 대신 강단을 선택해 주목을 받았던 그다. 이 같은 결정에는 2004년부터 이 대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조무제 전 대법관의 영향도 컸다. 조 석좌교수는 1993년 공직자 재산공개 때 전 재산 6434만 원을 신고해 ‘딸깍발이 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존경하는 선배님이시죠. 1986년인가요,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할 때 같은 재판부에서 일하면서 실력이나 인품 등 많은 면에서 감동을 받았어요. 최근에 식사를 같이 하면서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김 전 대법관은 이번 학기에는 특강을 위주로 하고, 강의 준비를 한 뒤 내년 봄부터 정규 수업을 맡을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대법관으로 지낸 지난 6년간의 소회가 궁금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대법관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부산지역 대표 선수로 뛴다는 생각에 쉴 틈 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부산 대표가 실력 없단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섭섭하겠다는 질문에 그는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은 것 같아 편안하고 자유롭다”며 “몸과 마음을 해독하면서 빈둥거리고 싶은 게 솔직한 지금 심정”이라고 귀띔했다.

40년 가까이 법조인의 길을 걷는 동안 그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기여하는 다수의 판결을 선고하고, 온화한 성품을 바탕으로 재판을 진행해 지역사회와 법조계에서 신망이 두텁다. 2008년 ‘불법체류 중인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다가 다쳤어도 이를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 이주노동자의 인권 보호에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숱한 판결 가운데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주심을 맡으면서 반대의견(소수의견)을 낸 ‘휴일근무 수당 판결’을 꼽았다. 지난 6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옛 근로기준법상 휴일근로는 연장근로 수당 없이 휴일근로수당만 지급하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2008년 처음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 만에 ‘휴일에 일을 시킬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통상임금의 1.5배만 주면 된다’고 결론이 났다.

“이 재판은 1주일에 몇 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지난 2월 국회가 최대 쟁점이 되던 주당 최대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싱겁게 됐습니다만,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공개변론도 열고 법률적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한 사건이었습니다.” 천상 법조인일 것 같은 그는 학창시절 이과생으로 의대나 약대를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아마비 장애 때문에 입학 자체가 허용이 안 되면서 이 길을 걷게 됐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도 헷갈릴 만큼 긴 시간이 지났다.

판결 때마다 ‘나로 인해 한 사람이라도 억울함을 면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섰다는 김 전 대법관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말고 일관되고 정확하게, 가장 기본에 충실한 법률 해석을 할 것”을 후배 법조인에게 당부했다. 임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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