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계·남명과 교유한 학자지만
- 제대로 평가 안 돼 안타까워

- 작년부터 ‘구암총서’ 제작 중
- 남은자료 거의 없어 어려움도
- 향후 학술행사·편찬작업 계획

“우리 고장에서 태어난 구암(龜巖) 이정(李楨) 선생은 퇴계나 남명과 교유한 대학자인데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25세에 장원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뒤 60세가 되도록 오로지 인문학에만 열중한 학자였습니다.”

이은식 구계서원장은 28일 경남 사천시 구암리 구계서원에서 “구암 선생의 인간존중 학문을 통해 사천 인문학을 부흥시키겠다”고 말했다.

구암 선생을 재조명하기 위해 학술대회와 구암총서 발행을 추진하는 문학박사 이은식(65) 구계서원장.

2015년부터 서원장으로 위촉돼 향사와 현창사업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부터 경남 사천시가 추진하는 ‘구암총서’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장원급제문에서부터 시, 서간문, 도서 발간, 서원 건립 등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학문적 업적을 집대성하는 방대한 작업이지만 기초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구암 선생은 1512년 사천읍 구암리에서 태어나 공직생활을 한 뒤 말년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1572년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호인 구암은 사천 이씨 집안이 대대로 살아온 이 마을에 거북바위가 있어 명명됐다. 마을이름도 당연히 구암마을이다. 선생은 12세 때 경상도지역의 인재들을 모아 교육했던 하과(夏科)에서 장원을 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원장은 “퇴계는 자신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구암에게 가장 많은 70여 통의 서한문을 보낸 것으로 조사돼 두 분의 사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며 “그러나 구암이 받은 서한문이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실제로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선생은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서적을 국내에 들여와 우리나라 성리학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며 희귀한 서책이 있으면 퇴계 선생께 권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설명했다. 경주 부윤으로 있을 때는 허물어지고 방치된 경주의 왕릉과 사찰 등의 문화재 복원사업을 주도했고 설총과 김유신, 최치원 등을 향사하는 서악서원을 건립했다. 오늘날의 경주가 신라문화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주춧돌을 구암 선생이 놓았다는 것이다.

선생이 순천부사로 재직할 때는 옥천정사(나중에 사액을 받아 옥천서원이 됨)를 건립했는데, 선생이 건립한 세 곳(서악서원 옥천서원 구계서원)의 서원은 모두 임금으로부터 사액서원으로 지정됐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구암이 유일하다.

이 원장은 “대학원 지도교수가 ‘사천의 구암 선생은 참으로 대단한 어른이다. 그런데 정작 사천사람은 모르더라’고 핀잔을 해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한학과 구암과 관련된 공부를 찾아서 하게 됐다”며 “산청과 사천 등지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구암 선생과 구암학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사천문화원에 구암제와 구암 학술대회 개최를 건의해 관철시켰다. 구암 선생의 장원급제를 기념하는 과거시험 재현을 건의해 전국 한시백일장을 개최하고 있다. 이 원장은 “현재 준비하고 있는 구암총서 발간을 계기로 대대적인 학술행사나 체계적인 편찬작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선생은 퇴계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남명 조식 선생과도 각별한 사이였다”며 “남명과 가까운 곳에서 만년을 보내기 위해 남명의 산천재 인근에 처소까지 마련했으나 이사는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산이 높다고 신령스러운 것이 아니라 낮아도 신선이 살면 신령스럽고, 물이 깊다고 신령스러운 것이 아니라 용이 살아야 신령스러운 곳이듯, 벼슬이 높다고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벼슬이 낮다고 해서 대단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원장은 “구암학의 요체인 경(敬)과 교(敎)를 바탕으로 한 인간 존중의 학문을 통해 사천 인문학을 부흥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