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력은 권력구도의 문제
- 문제제기·도움요청 어렵고
- 주위 시선·역고소도 부담

- 가해자 보면 범죄인식 부족
- 법적 처벌 반드시 받게해야

최근 문화예술계에서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는 고백인 ‘미투(#Me Too)’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성폭력상담소·여성단체 연합·부산여성상담소 피해자시설 협의회는 지난주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부산성폭력상담소에서 13년간 일해온 서지율(35) 사무국장과 미투 운동의 의미와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부산성폭력상담소 서지율 사무국장이 ‘미투(#Me Too) 운동’의 의미와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진기자 kjj1761@kookje.co.kr

서 사무국장은 성폭력의 개념이 포괄적이라는 것부터 설명했다. 성폭력은 강간에 해당하는 성폭행, 신체적 접촉이 있는 성추행, 언어나 시선 등으로 행해진 성희롱으로 세분된다. 최근에는 성추행과 성희롱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향이 있지만 성폭력은 이런 유형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서 사무국장은 “성폭력은 남녀 간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력 구도에 관한 문제다. 회사에서 상사가 후배 직원에게 성폭력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반대 경우는 성립이 잘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문화예술계에서 폭로가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선 ‘그 업계의 특성이 있어서’라고 짐작했다. “연극 연출가는 배우를 쓸지 안 쓸지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자기 일과 미래의 경력까지 쥐락펴락하는 사람에게 어떤 반항이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을까”라며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했다. 그는 “더 악랄한 것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집단 내에서 선택한다는 거다. 성정이 여리거나 반항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골라 몹쓸 짓을 한다”며 분노했다.

게다가 성폭력 피해자가 가까운 사람에게 그 일을 드러내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것도 폭로 후에 이어지는 검증의 시간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에게 왜 그런 술자리에 따라갔느냐, 네가 여지를 준 것은 아니냐, 왜 그런 옷을 입었느냐며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으려는 태도가 이어지니 입을 여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서 사무국장은 “더 속이 터지는 부분은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이 성폭력이 아닌 호감의 표시, 혹은 상호 간에 이해된 애정 행동이었다고 믿고 주장할 때”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건 폭로뿐이라 가해자에게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는 일을 무릅쓰고도 터트리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폭력 가해자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도대체 가해자들은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했다. 서 사무국장은 “대부분 시작은 비슷하다. 자신의 잘못은 알겠지만 그렇게까지 나쁜 일인지를 모르겠다는 토로가 이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자신의 행동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셈이다.

그는 “성폭력과 관련된 감수성이 떨어지는 거다. 한두 번 해보았지만 자신에게 반항하는 이가 거의 없자 자신의 행동이 문제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라며 이들의 손쉽게 말로 하는 사과에 대해 경계하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말로만 죄송하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덜어지지 않는다. 법적인 처벌을 분명히 받고 조사과정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 사무국장은 “미투 운동의 대책위를 꾸려 피해자들의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 운영을 계획 중이다. 이와 함께 지자체가 성 상담 고충 창구를 운영하는 조례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계에 이어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줄줄이 터져 나올 것”이라며 “이번 미투를 계기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고통을 이겨내고 생존자로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