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관 때부터 20여 년 근무
- 직원부터 투숙·방문객까지
- 각종 보건 업무 도맡아

- 질 높은 서비스·상담 위해
-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한 일본인 바이어가 50분째 내려오지 않는대요. 무슨 일 생긴 거 아닐까요?” 다급한 호텔 로비 직원의 목소리에 부산롯데호텔 보건관리자 최선녀 간호사는 곧장 응급키트를 쥐고 객실로 뛰어갔다. 이 고객과 만나기로 했다는 방문객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60대 고객은 욕실에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몇 년 전 일이지만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심폐소생술로 골든타임을 지켜내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태워 보냈죠. 이후 건강을 회복했고 계약도 잘 진행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습니다.”

부산롯데호텔 보건관리자 최선녀 간호사는 “입사 후에도 미국 간호사 자격증과 한방 교육과정을 수료하는 등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빈 기자

산업안전보건법상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은 보건관리자를 둬야 한다. 의사나 간호사 등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자격을 취득한 사람을 선임해야 하는데, 인건비 부담이 커 위탁기관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호텔의 경우 ‘요즘 같은 불황에 고객 응대 직원을 한 명 더 뽑는 게 낫다’는 인식이 있어 보건관리자 채용을 유지하는 호텔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부산롯데호텔은 1997년 개관 이후 현재까지 이 자리를 한 번도 비운 적이 없다. 그 자리를 지킨 이가 바로 최 간호사다. 건물 내 1000명 가까운 호텔·면세점 직원은 물론 투숙객과 연회장 및 식음장 고객 사이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급 상황에 대응해오고 있다.

“한 번은 3층 연회장 에스컬레이터에서 고객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119에 신고한 뒤 6층 피트니스 시설 보건관리자와 협업해 응급상황에 대처했는데, 알고 보니 미리 알려주지 않고 실시한 가상훈련이었어요. 빠르고 정확한 대처로 칭찬을 받았죠. 고객 비밀 보호 때문에 하나하나 얘기할 수 없지만 호텔 하루 이용객만 3000명이 넘다 보니 온갖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소소하게는 식음장에서 생선 가시를 빼드린 적도 있고, 상처가 나면 호텔에서 바로 드레싱을 해드리기도 하죠.”

호텔의 이 같은 보건 서비스와 발 빠른 대응은 부산을 찾는 국내외 방문객의 관광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는 평가다. 천식 환자의 경우 처방전을 받아오면 산소 공급 시설을 제공하는 등 최 간호사의 관리 아래 보건 관련 주문에도 적극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최근에는 호텔에 입점한 면세점에서 경미한 외상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 환자가 있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최 간호사가 드레싱을 해주는 등 고객 치료를 맡고 있다.

방문객뿐 아니라 직원들 건강 관리도 그의 몫이다. 지난달 28일 인터뷰를 하는 1시간 동안 소화 불량부터 건강 상담까지 6명의 직원이 최 간호사를 찾았다. 얼마 전에는 밤 11시30분에 직원 어머니가 패혈증 증세를 보인다는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가 함께 병원에 간 적도 있다. 20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쌓아온 신뢰 덕분에 몇몇 직원은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터놓고 상담할 정도다. 업무에 대한 그의 애정 덕에 부산롯데호텔은 2회 연속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근로자 건강증진활동 우수사업장’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호텔에 들어오기 전까지 대형병원 중환자실 근무로 잔뼈 굵은 그였지만 각종 응급 상황과 건강 관리 업무를 맡으면서 한계를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입사 후에도 미국 간호사 자격증과 한방 및 민간요법 교육과정 수료, 스포츠 테이핑 요법 수강 등 끊임없이 공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는 상담 기법을 새롭게 배워볼 계획이다. “좀 더 질 높은 보건 서비스를 하려면 양방뿐 아니라 한방, 민간요법 등 다각도로 접근해야 하더군요. 저에 대한 직원들의 믿음은 제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에요. 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는 시간은 저에게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최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