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음실서 후반작업 부산 유일
- 곡성 등 영화 100여 편 참여
- “영화제작·관객은 늘었지만
- 후반작업 근무 환경 더 열악
- 지역산업과 인재육성 꿈”

셀러리 다발을 양손에 꼭 쥐고 수건을 쥐어짜듯이 비틀었다. 이 야채 다발에서 마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최근 작업한 창 감독의 단편 ‘숲속의 아이’에서 남자 구미호의 손톱이 길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나는 소리예요.”

	‘소리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폴리 아티스트 정성권 대표는 “부산의 영화산업은 시간·장소 제약이 없는 후반작업 분야 육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진 기자

최근 부산 남구 대연동 ‘모노폴리’ 녹음실에서 만난 정성권(43) 대표는 ‘소리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폴리 아티스트다. 영화에서 대사와 음악을 제외하고, 촬영현장에서 잡아내지 못한 소리와 효과음을 도구와 몸을 이용해 만든다. 사운드 관련 스태프 중 아티스트(예술가)란 직함이 유일하게 붙는다.

녹음실은 차라리 만물 고물상 같았다. 흙 돌 냄비 의자 빗자루 나무판자 따위 소품이 어지럽게 뒹굴었다. “같은 흙길이라도 그 위를 걸을 때 소리가 다 달라요. 모래사장, 진흙 길, 흙이 조금 있는 길 등을 걸을 때 상황에 맞는 소리를 내기 위해 많은 고민과 복잡한 작업을 거쳐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영화와 소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내 손에서 나온 소리가 영화에 오래도록 봉인되는 희열” 때문에 2001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전문 교육 과정이 딱히 없어, 대학 졸업 후 남양주종합촬영소 녹음실에서 약 2년간 폴리 분야 인턴과정을 수료했고 녹음실을 운영하는 선배 밑에서 3년간 일한 뒤 프리랜서가 됐다. 고향인 부산에 와서 자체 녹음실을 열고 작업한 것은 2013년부터다.

“부산에서 자체 녹음실을 갖고 후반 작업을 하는 곳은 모노폴리가 유일하죠. 지금까지는 서울에서 일하는 선배들을 통해 작업을 받아서 하고 있어요. 1년에 상업 영화는 15~20편, 드라마와 단편, 애니메이션까지 합쳐 많으면 50편 정도 작업해요.”

그는 ‘곡성’ ‘반드시 잡는다’ ‘임금님의 사건수첩’ ‘보통사람’ ‘불한당’ ‘마이웨이’ 등 족히 100편이 넘는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곡성’에서 일본 배우 쿠나무라 준이 사슴의 뱃가죽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내장을 뜯어 먹는 장면에서 나는 소리도 그의 작품이다. “‘곡성’을 작업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나라에선 이전에 볼 수 없던 시나리오이다 보니 처음 시도하는 소리가 많았어요. 소리는 별도의 이론적인 공식이 없기 때문에 영화를 계속 돌려 보면서 자신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어요. 보통 상업영화 한 편 작업하는 데 2주가 걸리는데, 곡성은 두 달이나 걸렸죠.”

미국 할리우드에선 발소리 전문 등 소리를 만드는 일이 세분되어 있고 사운드 스태프 대우가 좋아 영화 편당 7, 8명의 폴리 아티스트가 참여한다. 그는 “우린 보수가 또래 직장인보다 낮고, 2명의 인력으로 2주 동안 바삐 녹음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영화 제작 편수와 관객 수는 많이 늘었지만, 영화 후반작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작업환경은 오히려 열악해졌다고 했다. “유명 감독과 영화배우의 몸값은 많이 높아졌지만, 투자자들이 영화 후반작업에 매기는 단가는 오히려 전보다 낮아졌어요. 생계를 위해선 많은 작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대학에서 강의도 하는 정 대표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서울로 보내야 할 때 가장 아쉽다고 했다. 모노폴리를 더 키워 지역 산업과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지역에 영화 관련 학과가 많고 그 중 음향 분야를 선호하는 학생도 많지만, 관련 산업 기반이 없다 보니 자리 잡기가 정말 힘들어요. 서울에서 제작한 영화라도 후반작업인 CG(컴퓨터그래픽)나 사운드, 시나리오 기획 등은 부산이나 전국 어디에서 할 수 있죠. 부산의 영화 산업 역시 시간·장소 제약이 없는 후반 작업 분야를 집중해서 육성하고 산업을 연계할 지원책이 필요해요.”

정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