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년시절부터 고향 들꽃 애호
- 15년전 본격적으로 사진배워
- 틈틈이 출사다니며 꽃만 찍어
- 꽃 전설·사진 담은 책 출간도

종종걸음으로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꽃을 향해 날아드는 나비 같았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액자에 피어 있는 꽃들을 가리키며 렌즈에 담기까지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모습에는 다정한 연인과의 추억을 반추하듯 애정이 담뿍 담겼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이 아닌, 취미로 가진 사람의 모습은 이런 걸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온몸에서 행복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생애 첫 꽃 사진전을 연 일성냉동 손상기 대표이사는 “사유의 시공간을 만들어준 들꽃을 비롯한 자연 그대로인 생명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순용 선임기자

최근 부산가톨릭센터 대청갤러리에서 생애 첫 출판기념회와 사진전(‘꽃숨소리’)을 연 손상기 ㈜일성냉동(부산 사하구) 대표이사. 첫 전시에서 그는 15년 전부터 사진을 배우고 직접 출사해 카메라에 담은 들꽃 24점을 세상에 내놓았다. 전시에 소개하지 못한 꽃사진 등 58점은 앞서 지난 10월 같은 제목의 책으로 먼저 출간해 선보였다. 14년간 롯데제과에서 근무하다 1990년대 중반 일성냉동으로 이직, 수년 전 회사를 인수한 그는 여느 기업인들이 주말 골프를 칠 때 등산장비와 카메라를 들고 산을 오른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어떻게 들꽃에 빠져들었을까.

그는 “아버지가 기술 부문 교사라서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자주 만졌다. 시골(창원)에 살면서 자연스레 들꽃을 좋아했다. 사진은 15년 전 정봉채 사진작가에게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년시절 첫정을 주었기에 지금도 들꽃만 바라볼 뿐, 다른 피사체에는 곁을 주지 않는다. 그는 “사유의 시공간을 만들어준 들꽃을 비롯한 자연 그대로인 생명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꽃 한 송이를 찍기 위해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숱하게 있었다. 그는 바위 사이에 피어 있는 꽃 사진을 가리키며 “2년 전 백두산에서 찍었다. 큰 바위 틈새에 피어있는 꽃이 어찌나 예쁜지 가까이 다가가다 비탈길에서 3바퀴를 굴렀다. 일행은 모두 내가 크게 다쳤거나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좀 다쳤지만 다행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웃었다.

최근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지난 8월 아내와 함께 알프스 돌로미테 국립공원에 갔어요. 차를 렌트해 달리다 길가에 핀 물매화를 봤죠. 너무 반가워서 아내는 차에 두고 혼자 사진을 찍는데, 이상하게 빨리 차로 가고 싶은 겁니다. 급히 가 보니 경사진 길에 주차해 두었던 차가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정신없이 달려가 겨우 차를 멈추었죠. 꽃 때문에 집사람이 다칠 뻔했으니…. 지금도 아찔합니다. 허허.”

책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몰운대서 만나는 금난초와 은난초가 절벽 바위에서 피워낸 슬픈 사랑, 비비추에 얽힌 지리산 아홉 식구의 사연, 산의 표고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는 은방울꽃 등등. 손 대표는 “책 속 전설은 모두 내가 지어냈다. 매달 책값으로 10만 원 이상을 쓸 만큼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다. ‘족두리풀’에서는 남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야기했는데, 글을 쓰고 난 뒤 경북 소백산에서 속이 타서 검게 변한 것처럼 보이는 하트 잎 족두리풀을 봤다. 부산 경남에서는 모두 녹색 잎의 꽃만 봤기에 너무 신기했다. 책을 쓰면서 미처 알지 못한 재능을 발견한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실제 가수 윤종신의 외사촌 형이기도 한 그는 외가의 풍부한 감수성을 이어받은 것 같다며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십수 년째 주말마다 들꽃을 만나러 가는 남편을 아내는 어떻게 볼까. “나이가 들수록 자의든 타의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어야 건강한 나중 삶이 보장되죠. 철쭉 아래 습한 곳에서 보는 이 없어도 잘 피어 있는 설앵초처럼 인생은 혼자 꿋꿋이 잘 가야 합니다. 아내도 여러 취미 활동으로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진 촬영 외에도 기타 연주와 등산 등 많은 취미를 가진 손 대표는 “삶의 궁극적 지향점은 행복이다.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매일 행복해지는 방법을 단련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임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