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청년이 배 타다 연극시작
- 연극에 빠진 뱃사람 이야기
- 해기사협월간지 40년기고글
- ‘바다, 여기 있다’로 책 출간
- “독자·관람객 눈높이 맞출것”

희곡을 쓰고 무대를 고민하는 ‘마도로스’가 있다. 40여 년 뱃사람으로 살면서도 짧게 육지에 나올 때면 반드시 연극 한 편에는 참여해 무대에 올리고 바다로 돌아갔다. 수개월 간 긴 항해를 하며 남는 시간엔 작품과 희곡 분석에 몰두했고, 바다에서 느끼는 생각을 정리해 틈틈이 글을 썼다.

조득춘 1급 해기사는 “해기사로 살았기에 연극인으로서의 삶을 현실적으로 지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한국해기사협회가 발간하는 월간지 ‘海(해)바라기’는 그의 글을 40년 넘게 실어왔고, 그는 최근 여기에 실은 글을 묶어 처음으로 책을 펴냈다. 저자 조득춘(66)의 ‘바다, 여기 있다’(케플러49 출판사)는 연극에 매료된 바다 사나이의 이야기이다. ‘문학청년’ 출신답게 정돈된 문장과 망망대해를 떠돌며 길어 올린 상념이 예사롭지 않다.

바다가 먼저였을까, 연극이 먼저였을까. 저자의 독특한 이력을 알고자 이 질문부터 던졌다. 그는 “연극인으로 기억되고 싶지만, 바다를 아끼고 뱃사람의 삶도 참으로 소중하다. 해기사로 살며 생활인이자 연극인으로서 삶을 현실적으로 지탱할 수 있었고, 바다에서 느끼는 고독과 불안은 희곡을 읽으며 견뎌낼 수 있었다. 배는 고독하지만, 독서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19살부터 시를 쓰며 신춘문예에 7번을 내리 낙방하고 1975년 선원이 되었다. 상선을 주로 탔고 바다 생활은 나름 체질에 맞았다. 그러다 1978년 우연히 극단 전위무대에 입단했다”고 회고했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문학청년이 배를 타다 연극을 시작한 셈’이다. 그는 ‘해기사의 꽃’으로도 불리는 1급 해기사이다.

극단 전위무대에는 부산 원로 연극인 전성환 씨와 맺은 인연으로 입단했다. 당시 우연히 본 연극이 인상 깊었고, 손윗동서이기도 한 전성환 연극인의 안내로 전위무대 부설 연극학교를 1기로 졸업하고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꾸준히 활동할 수는 없었지만, 배를 타는 동안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희곡을 쓰거나 분석하며 기획도 했다. 연출과 기획, 심부름까지 두루 맡으며 연극무대를 만들어 왔고, 전위무대 무대감독 생활을 하다 5년쯤 전부터 예술감독을 맡았다. 연출가와 함께 사실상 무대와 작품을 책임져야 하는 무대감독 역할에 늘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글을 써왔지만 활자가 무대 언어로 재창조되는 희곡과 연극이라는 장르가 참 매력적이었다. 글의 한계를 무대에서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바다, 여기 있다’에는 그런 그가 틈틈이 쓰고 기고한 글이 담겨 있다. 부끄러운 마음에 비매품으로 만들자고 주장했으나, 글을 본 출판사에서 “그렇게 묻히기엔 아깝다”며 정식 출판을 했다. 60년 동안 발간해 700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해기사협회 월간지 ‘해바라기’의 고 김동규 당시 편집장이 처음 출간 제의를 했다. ‘해기사 연극인이 저자가 되어 쓴 책’은 사실상 처음이다 보니 주위에서 관심이 높았다. 한국해양대 도서관에서도 책을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고, 연극인과 독자들도 좋은 후기를 남겨주었다. 그는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글로 읽히고 싶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독자에게 설교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고 말했다. 연극 또한 관객 눈높이에서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책에 평론가 등의 추천사를 따로 싣지 않은 것도 행여 책이 ‘무거워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뱃사람이자 연극인으로 계속 남고 싶고 글도 꾸준히 쓰겠다는 그는 “미국 극작가이자 선원이었던 유진 오닐의 동판이 세워진 브로드웨이서 감회에 젖은 적도 있다. 나의 항해와 연극과 글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