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든 소방관 생활하면서
- 하루 5시간씩 붓질 구슬땀
- 7차례 개인전·수차례 전시회
- 아픔 녹여 낸 인물화 새 도전
부산에 ‘그림 그리는 소방관’이 있다. 개인전만 7차례 연 ‘프로’다.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1990년대 초 부산에 터를 잡은 기장소방서 소방위 손종민(49) 작가다. 부산 기장 일광면에 있는 손 작가의 작업실에서 소방관, 화가로 남들보다 배로 열심히 살았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사용한 40㎡ 작업실은 근작으로 꽉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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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 일광면 작업실에서 만난 손종민 작가. 곽재훈 전문기자 |
손 작가는 사회생활을 하다 늦게 그림을 정식으로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지만, 그림 공부를 시켜줄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집안에 없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점원으로 1년 정도 일했어요. 서울에서 노점도 1년쯤 했죠. 노점을 하다 보니 배움이 필요하다고 뼈저리게 느꼈어요. 부모님께 부탁해 뒤늦게 대학 입시 공부를 시작했죠.”
부산 기장에 시집온 누나를 따라 기장에서 입시 공부를 했다. 또래보다 5년 정도 늦은 1992년 동의대 미술학과에 입학해 한국화를 전공했다. 그는 “학교 다니는 시간이 좋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4학년 때 진로를 고민했다. 대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또 손을 내미는 게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림을 오래 그리려면 안정된 직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정보센터에서 공무원 채용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특히 소방관은 당시 격일 근무라 하루 일하면, 하루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도전했다. 1996년 10월 부산 기장소방서에 첫 발령을 받았다.
소방관이 된 후 등산로, 송정해수욕장, 소방서 등 정식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대관료도 비쌌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이 내 그림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장 장안사 척판암 가는 등산로에 이젤을 세우고 전시를 열었을 때 일이다. 어떤 꼬마가 손 작가 그림을 보고 “너무 못 그렸다”며 웃었다. ‘충격’이었지만, 자신의 그림을 되돌아봤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추상화를 그렸지만, 관객에게는 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다시, 혼자,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실제 풍경을 계속 스케치했어요. 7, 8년 정도 끊임없이 연습하니 실경을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한동안 먹으로 그린 부산 풍경은 손 작가를 대표하는 그림이었다. 기장의 계곡과 산, 송정 바다, 해운대 해안길이 먹의 농담으로만 생생하게 살아났다.
지난달 손 작가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수년간 익숙해진 풍경 그림에서 벗어나 먹으로 인물을 그려 개인전을 열었다. 인물 먹그림은 흔하지 않다. 잘 팔리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인물화에 도전한 건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풍경화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급대원으로 10년간 구급차를 탔어요. 온갖 사건 사고로 다치고, 아픈 사람들을 보죠. 거짓 웃음은 있지만, 거짓 아픔은 없습니다. 아플 때는 진실된 표정이 드러나죠. 그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의 인물화는 붓 터치만으로 완성된다.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야 한다. 획마다 나타내고 싶은 감정과 철학이 들어간다. 한 획이라도 잘못 그으면 작품은 그대로 ‘실패’. 쉬운 과정이 아니다. 그래도 “남들이 다 하는 방식으로 그리긴 싫었다.”
힘든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 하루 5시간 정도 꾸준히 그림을 그린 손 작가. 지난 20년의 ‘이중생활’을 어떻게 자평할까. “그림만 그렸다면, 오래 그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 소방관 직업을 소홀히 했다면 계속 그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 둘 다 소중합니다.” 내년에는 서울에서 전시를 열고, 아트페어에 참여해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박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