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안일만 하던 평범한 주부
- 마을 거점시설 운영 맡으며
- 쿠키 제작·목공예 등 교육
- 침체 지역 주민들과 소통
- 수익 창출·마을 변화 동시에
오밀조밀 늘어선 집 너머로 탁 트인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산 서구 산복도로 천마로에는 특별한 건물이 한 채 있다. 기차처럼 길쭉한 생김새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 ‘기찻집’이라 불리는 단층 건물이다. 3년6개월 전 고쳐 세운 기찻집은 독특한 외형만큼이나 특별한 게 하나 더 있다. 매일 오후 스무 평 남짓 공간이 40, 50대 여성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아기자기한 목공예품을 만들거나 고소한 쿠키를 찍어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미동 산복마을의 당찬 주부 모임인 ‘아미맘스’는 부산에서 가장 침체한 지역 중 하나였던 아미동을 ‘사람 냄새 나는 공간’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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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미 아미맘스 회장이 사회적기업 ‘기찻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곽재훈 전문기자 kwakjh@kookje.co.kr |
지난 27일 아미맘스 손정미(54) 회장을 만난 장소인 기찻집의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웃음꽃이 가득했다. 전날 사상구의 한 마을에서 쿠키 30세트(300개)를 만들어달라는 급한 부탁을 해와 모두가 자정 넘게 손을 걷어붙였지만,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 없이 활기찬 모습이었다. 손 회장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쿠키를 찍는 서로의 얼굴을 보는데 ‘이 시간에 뭐 하는 짓인고’ 하면서 어찌나 웃음이 나오던지. 그러면서도 주부 회원들이 한데 모여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고 웃었다.
아미맘스는 10년 전 아미초등학교 학부모로 인연을 맺고 학습 도우미 등 봉사활동을 해오다 지금껏 이어진 아미동 주부 24명의 모임이다. 2014년 3월 서구가 기찻집을 새롭게 고쳐 마을 거점시설로 세우자 ‘왕언니’ 손 회장을 중심으로 뭉친 아미맘스가 시설 운영을 맡았다. ‘기찻집 예술 체험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이고 카페·체험장·작업장·마을공동체 공간으로 바꿨다. 기찻집이 사회적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회원은 쿠키·빵 제작부터 목공·바리스타·미니어처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등을 직접 운영하며 수익을 내고, 아미동으로 외지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손 회장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전문 자격증을 딴 강사 등 재취업한 당당한 중년으로 변신했다. 사회적경제가 곁들여진 아미맘스가 마을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간다”고 말했다.
아미맘스 회원들은 초창기에는 ‘가정주부가 무슨 일이냐. 능력도 없고 아무 일도 못 한다’는 핀잔을 들었다. 손 회장은 “줄곧 집안일만 하다 보니 자신의 존재가치를 잘 느끼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거나 자식 교육에 과하게 집착하는 여성이 많았다. 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찻집에 모인 회원은 스스로 자립 의지를 키워나가면서 작지만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찾고 직접 돈도 버니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당당해진 것이다. 손 회장은 “낯가림이 심하고 표정이 늘 어두침침하던 한 회원은 얼굴도 밝게 펴지면서 가정이 화목해졌다. ‘공부 공부’하던 엄마도 일이 생기니 아이를 여유롭게 바라보고 존중해주면서 관계도 더 좋아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손 회장은 아미동 엄마의 변화가 마을 공동체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주민은 기찻집에 모여 아미맘스 강사에게 교육을 받거나 제품을 만들면서 수익을 나눠 갖는다. 손주, 며느리, 시어머니뻘 되는 주민을 모아 댄스동아리를 만들고, 마을 축제를 준비한다.
손 회장은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사람 살맛이 난다. 이젠 여기서 오래 살고 싶다’는 어르신의 말을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며 “아미맘스와 주민들이 함께 꾸려 갈 아미동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