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신발업체 진양고무에
- 평사원으로 입사, 50년 근무
- 인기 없는 자리 자청해 일해
- 부산경제 항만인프라 살려야

"내년이면 50년입니다." 진양홀딩스 임규호(70) 부회장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를 만나 밝힌 '근무 연수'에 순간 놀랐다. 얼마 전 한 취업포털 사이트는 신입사원 10명 중 4명은 1년 내 직장을 그만둔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평생 직장'에 대한 개념이 사라진 요즘 추세에서 반 백 년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은 부산 경제계는 물론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듯했다. 진양홀딩스는 과거 부산 신발 산업 전성기를 이끈 5대 기업중 하나였던 진양고무가 전신이다. 1970·80년대 진양고무의 상표 '도널드'는 국제상사의 '왕자표', 태화의 '말표', 동양의 '기차표' 등과 함께 부산 신발을 대표하는 이름이었다. 현재 부산진구청 청사와 이마트 부지 등이 당시 진양고무가 있던 자리다.

임규호 진양홀딩스 부회장은 "회사 비전은 자신들이 만들어가는 만큼 젊은이들이 개미의 열정을 가졌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이용우 기자

임 부회장은 1968년에 평사원으로 진양고무에 입사했다. 지금은 진양홀딩스 부회장과 자회사인 진양산업 진양화학 진양폴리우레탄 등의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임 부회장의 모습에서는 '50년 직장인'의 뚝심이 느껴졌다. 그는 한평생 같은 직장에 몸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발 산업이 융성했을때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많이 받았는데, 그것보다는 가는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딴 눈을 판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평사원에서 부회장까지 오른 비결에 대해서는 소위 인기 없는 자리를 자청한 것을 꼽았다. 임 부회장은 "인사 때 주로 다른 직원들이 가기를 꺼리는 자리에 자처해서 갔다"며 "잘되는 공장은 아무리 내가 가서 잘해도 현상 유지 수준밖에 안 되지만, 부진한 공장은 조금만 신경써도 성과가 나타난다. 자임해서 간 공장마다 성과를 냈고 한 번도 실패를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임 부회장은 "일에 소홀할 수 있어 골프도 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한때 골프를 할 때는 일과 중에도 골프를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더라"며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골프를 접었고, 휴일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등산을 좋아해 매주 산에 오른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난과 중소기업 구인난이 가중되는 현실이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임 부회장은 "청년들이 직업을 못 구한다고 하는데, 우리 자회사들만 해도 신입사원을 못 구하고 있다"며 "신입사원을 뽑아놓으면 몇 달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고, 대기업으로만 자꾸 몰려가니까 중소기업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기업에 들어와서 불과 몇달 만에 그 회사의 실체를 알기는 어렵다"며 "회사 비전은 자신들이 만드는 것이다. 중소기업의 비전을 비관적으로, 너무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쓴 책을 인용하면서 "개미의 열정을 가지라"고 청년들에게 조언했다. 임 부회장은 "개미들은 하나의 조직이다. 이 개미 조직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무게의 몇 백 배가 넘는 물건도 어떤 수난을 겪더라도 끝내 옮기는 것이 개미들이다. 뭐든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얻어진다"고 조언했다.

50년간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부산 경제의 현장을 지키고 있는 '원로 경제인'은 '항만'을 부산 경제 재도약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다. 임 부회장은 "과거에 신발산업이 부산에서 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항을 통한 신발 원자재 수입이 수월했기 때문"이라며 "부산의 최대 강점은 결국 항만 인프라다. 항만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