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올 전세계 식량난 대비
- 2012년부터 의욕 추진 사업
- 갈색거저리애벌레 등 이용
- 일반인·환자 음식개발 성과
- 공모로 '고소애·꽃벵이'애칭
- 내수키워 세계시장 도전 준비
"제 고향이 경기도 파주입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 메뚜기나 누에 번데기 같은 곤충을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참 맛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 식용 곤충을 먹을 때도 큰 거부감이 없었고 아주 고소했습니다."
최근 식용 곤충을 이용해 일반인 및 환자음식을 개발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전혜경(57) 원장. '곤충의 식품화'를 맡은 기관의 책임자에게 자신들이 개발한 곤충을 서슴지 않고 먹을 수 있느냐는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졌더니 당연하다는 듯 명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곤충의 식품화는 농업과학원이 2012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앞으로 다가올 전 세계적인 식량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외국에서는 이미 관련 산업이 자리를 잡은 상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10년 곤충산업육성법이 제정된 이후에야 행보가 시작됐다. 농업과학원은 꾸준한 노력 끝에 지난해 '갈색거저리 애벌레'(고소애)와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꽃벵이)를 식용으로 등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곤충들에 대해 '한시적 식품원료'로 인정했다. 갈색거저리 애벌레와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를 이용해 동결건조한 분말 등 식약처가 승인한 형태로만 식품을 만든다면 판매 및 섭취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곤충을 식품원료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전 원장은 "우선 이들 곤충이 식품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지를 알아봐야 했고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인체에 유해함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했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곤충을 식품원료로 쉽게 인정해주지 않으려는 식약처를 설득하는 일도 관건이었다. 식약처는 갈색거저리애벌레 등을 식용 곤충으로 분류하면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곤충이 식품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나타냈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쳐 탄생한 식용 곤충에 대한 전 원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그는 "고소애와 꽃벵이가 크기는 작지만 영양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단백질 함유량은 육류와 비슷하고 탄수화물과 지방도 풍부하다"고 자랑했다.
또 고소애는 새우나 견과류 같은 맛이 나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 때 다른 식재료와 조화를 잘 이룬다는 장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 원장은 식용 곤충의 장래를 낙관하고 있다. 현재 국민의 단백질 주공급원인 육류시장이 연 17조 원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고단백 곤충 식품이 1%만 차지해도 1700억 원가량이 된다는 계산에서다. 프랑스나 네덜란드, 벨기에 등 식용 곤충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는 외국시장 진출도 가능성이 충분하다.
문제는 내수시장을 키우려면 식용 곤충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없애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전 원장은 "곤충은 기피식품이 아니라 맛있고 영양도 풍부한 먹거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식용 곤충의 이름을 바꿔보자는 발상도 그래서 나왔다. 농업과학원은 지난 4월 대국민 공모를 통해 갈색거저리 애벌레에게는 '고소애',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에게는 '꽃벵이'라는 애칭을 달아줬다.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나온 전 원장은 1984년부터 농진청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개발(R&D) 총괄부서인 연구정책국 국장, 국립 식량과학원 원장을 거쳐 2013년 농업과학원 수장 자리에 올랐다. 모두 '여성 최초'다. 전 원장에 앞서 이런 직위에 오른 여성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남성 공무원들의 견제(?)를 어떻게 버텨냈느냐는 질문에 "여성이라고 별도의 대우나 도움을 받은 적도 없고, 반대로 불이익을 당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굳이 여성임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여성 리더로서 우리 사회의 '유리 천장'을 조금이나마 깨뜨리는 데 기여를 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부분에는 나름대로 보람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전 원장은 농업과학원이 식용 곤충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농업환경에 관한 기술 개발과 농산물 안전성 확보 방안 강구, 영농 기계화 구축, 농업유전자원 수집·보존·관리 등과 같은 일도 하는 곳이라며 조직에 대한 진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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