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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의료봉사·여성운동 앞장선 '부산 삼신할미'

산청한방엑스포 동의보감상 권혁란 신창한의원 원장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  |   입력 : 2013-10-22 20:24:45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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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임치료 일본서도 소문 자자
- 부산 여협회장 시절 개혁 주도
- 젊은층 등용 위한 정관개정 나서

- 위안부 할머니들 무료진료 위해
- 지역 한의사와 1대1 연결 하기도
- 이달 말 양·한방 요양병원 개원

2009년 (사)부산시여성단체협의회에 의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제22대 회장으로 선출된 개혁 성향의 신임 회장이 정관개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30여 개의 부산여협 소속 각 단체에 원로급만 있고 40, 50대의 중간층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당시 대부분의 회장들은 장기집권을 하고 있었다. 젊은 층을 등용해 부산 여성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는 개혁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그가 내세웠던 새 정관의 골자는 ▷단위 단체 회장 임기 6년 제한 ▷전직 여협 회장 당연직 이사 불허 ▷여협 회장의 분담금제 도입 등 크게 세 가지였다.

예상대로 저항이 만만찮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밀고 나갔다. 1년여의 진통 끝에 새 정관은 통과됐다. 부산여협 소속 각 단체 회장들은 새 정관에 의거해 첫 임기 6년째가 되는 2015년 대부분 새 얼굴로 물갈이된다.

이 개혁을 주도한 이는 당시 부산여성문제연구회를 이끌던 권혁란(63) 회장. 그의 본업은 한의사다. 중구 중앙동 신창한의원 원장이다. 권 원장은 "당시 반대하던 당사자들이 지금에 와서 뒤늦게 수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개혁을 원하면 바람을 일으켜야겠지만 결국 바람을 일으킨 사람이 역풍을 맞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라며 "그렇다고 변화의 바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의사로서 그는 지난 20일 막을 내린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에서 제9회 동의보감상(사회봉사부문)을 받았다. 30년간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수시로 가까운 이웃에서 멀게는 해외의료봉사까지 앞장선 점이 뒤늦게 빛을 본 것이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무료진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02년 지방 한의사로선 최초로 대한여한의사회 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당시 생존 할머니 179명과 지역별 한의사를 1대 1로 연결해 분기별로 진료해 한약 1재씩을 지어드리도록 했다.

그는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의 부산 출신 김옥이 할머니가 아직 눈에 선하다고도 했다. 진료 중 18세 때 떠난 고향집에 한 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고생 끝에 찾은 보수동 검정다리 위 양철지붕집을 확인하곤 펑펑 울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했다. 2007년에는 대구 출신 이용수 할머니 등 10여 명이 미의회 위안부 청문회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청심환 100개를 드리기도 했다.

강릉 출신인 권 원장의 고향 사랑도 애틋하다. 태풍 루사(2002) 매미(2003) 때 강원지역이 극심한 피해를 입자 그는 맨 먼저 고향으로 달려가 의료봉사를 펼쳤다. 수차례의 대형 산불 발생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덕분에 2007년 고향을 떠난 사람이 이례적으로 강원도로부터 '자랑스러운 강원여성상'을 받기도 했다.

권 원장은 약사·한의사 면허를 모두 지녔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 고향에서 약국을 하다 작고한 시아버지가 운영하던 지금의 신창한의원으로 시집왔다. 큰딸 출산 후 한의학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자 시아버지가 처음엔 말렸지만 재차 말씀드리자 허락했다. 사업을 하던 남편도 승락했다. 31세 때 원광대 한의대 본과 1학년 편입시험에 합격한 이래 특대생장학금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약학과는 다른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에 적응하는 데 1년 정도 걸렸지만 한의사 면허를 따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1984년 34세 때 시아버지 밑에서 수습기간을 거쳐 지금까지 30년간 외길을 걷고 있다. 이후 경희대에서 석사, 동국대에서 박사 학위도 받았다.

권 원장의 딸과 아들도 한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딸은 이미 박사학위를 받고 3년째 엄마와 함께 진료를 보고 있고, 아들은 한의대 본과 1학년이다. 신창한의원은 시아버지의 50년 외길을 포함, 같은 장소에서 3대에 걸쳐 80여 년간 부산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셈이다.

권 원장은 '부산의 삼신할미'로도 불린다. 여성불임 전문인 그는 난임 여성들에게 오랜 임상경험에 의한 한방치료를 통해 임신이 가능하도록 해 이 같은 닉네임을 얻었다. 그는 "이제껏 여기서 치료를 받고 출산한 아이만 해도 만 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소문이 한의원이 없는 일본에도 퍼져 최근 일본인 환자들이 자주 내원하며, 지난해부턴 두 달에 한 번씩 현지 병원의 초청으로 원정진료를 떠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이달 말 한의원 인근 중앙동 대로변에 오랜 꿈이던 신창요양병원을 개원한다. 양의와 한의의 원스톱 협진체계를 구축한다. 그는 "양·한방의 비교보다는 환자가 빨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의료인의 사명"이라며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양방의 의학적 지식과 한방의 오랜 임상적 사례를 통한 정체적(整體的)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중국한의학에 비해 전혀 뒤질 게 없는 우리 한의학이 전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에 불과하다"며 "이는 중국의 60%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앞으로 점유율을 10%까지 늘이는 것이 개인적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참, 동의보감상으로 받은 상금 1000만 원은 지난 15일 동의대 한의대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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