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접 현장 찾아 채록한 전설
- 이달 말 63회로 시리즈 마감
- 예상과 달리 독자 호응 높아
- 문화관광해설사들 꼭 읽어

지난 3월 5일부터 국제신문 '사람&이야기'면에 게재된 '주영택이 발로 찾은 부산의 전설 보따리'가 오는 31일 63회로 끝을 맺는다. 시리즈를 시작할 때 사실 편집국 내에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 웬 고리타분한 전설', 대체로 이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소개될 때마다 "어라, 이거 의외로 재밌네!"라는 평이 가랑비에 옷 젖듯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산문화관광해설사들에겐 필독 기사가 돼버렸고, 한 달에 한 번 국제신문 지면 평가를 하는 독자권익위원들도 '현장을 찾아다니며 채록한 전설이 상당히 읽을 만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독자들의 문의 전화도 잇따랐다. 가장 궁금해하는 점이 젊었을 때 뭘 하던 분이길래 이 방대한 전설을 어떻게 매주 한 편씩 실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올해 75세인 그는 부산대 사학과 56학번으로 2000년 해운대 동백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가마골향토역사연구원장이자 국사편찬위원회 부산사료조사위원이다.

"35년 동안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면서 비슷한 시기 우리 고장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문화재와 전설이 존재하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어요. 그래서 주말이면 관련 문헌을 보고 현장을 찾아 촌로들의 입을 통해 하나씩 자료를 모았지요."

주 원장은 "부산의 경우 지리적 특성 때문에 1592년 임진왜란, 1876년 부산 개항, 1950년 6·25전쟁 등 역사적 전환기에 기원하는 전설이 적지 않다"며 "이러한 토대하에서 반평생을 부산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전설을 채록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은 전설이 무려 350편. 충·효·예 등 인간의 삶이 묻어나는 생활전설, 지명전설, 서양인과 접촉한 일명 대외전설 등이 주류를 이룬다.

그의 전설이 유달리 진정성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발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로만 그치는 민담이나 신화와 달리 그의 전설의 종착역에는 장소나 전설의 존재 여부를 입증하는 그 무엇이 반드시 존재한다. 신문 속에 등장하는 사진은 수십년 전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기 위해 모두 그가 직접 찍은 것이다.

동래구 사직동 그의 2층 양옥집 작은 연구실에서 만난 주 원장은 "내년부턴 발을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시작할 땐 3개월 정도 생각했는데 차츰 주위의 반응이 괜찮아지면서 부담감이 물밀 듯이 밀려오더군요. 사실 취재는 다 됐고, 자료 또한 풍부해 쓰기만 하면 되는데도 글쓰기가 왜이리 힘이 드는지. 지난 10개월은 사생활은 거의 없었고 사실 부산의 전설에 매여 살았어요."

그는 지독한 자료 수집가이다. 반평생 채록한 전설을 담은 수첩은 50권, 신문 등 관련 자료를 스크랩한 대학노트가 200권이나 된다. 그것도 '해운대' '동래' '금정산' '문화재' '불교' 등으로 분류해서. 사진자료는 더 풍부하다.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배고픈 대학시절인 1957년부터 지금까지 카메라를 메고 다녀 지금까지 1만5000장 정도 갖고 있다.

그의 전설은 철저한 '아날로그식'으로 탄생한다. 펜으로 작성, 부산교대 인근에서 워드작업 후 프린트와 함께 USB에 담아온다. 집에서 다시 교열을 본 후 아들에게 부탁, 담당기자에게 이메일로 보낸다. 사진은 25년 단골인 경성대 사진관에서만 현상, 마실 겸해서 기자에게 직접 갖다준다.

지역향토사에 대한 주 원장의 공로는 상상을 초월한다. 금정산과 범어사에 대한 것은 가히 독보적이다. 600번 이상 금정산을 오른 결과물이다. 지금이야 널리 알려진 '범어 3기'(원효석대·자웅석계·암상금정)와 '금정8경'은 1947년 범어사에서 만든 '선찰대본산 범어사안내'라는 제법 두꺼운 안내서를 1989년 입수, 그가 2년간 온 산을 뒤져 확인한 것이다.

금정산의 숱한 바위군을 상징하는 '천구만별(千龜萬鼈·천 마리의 거북이와 만 마리의 자라)'이란 용어도 그의 작품이다. 금정산의 차(茶) 군락지 5곳, 금정산의 기우소가 놋정바위라는 사실, 범어사의 경계표시인 범어사기(석표) 10개 발견, 해월사지가 지금의 부산학생교육원 일대라는 사실 등도 그가 밝혀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8월 완간한 금정이야기 전집(4권)에 실려있다. 조선시대 교통로인 영남대로의 밀양~양산~동래 구간을 5년간의 답사 끝에 복원한 황산도 옛길 또한 그가 아니면 도저히 밝혀낼 수 없는 업적이다. 주 원장이 발품 팔아 발견, 지역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스크랩한 대학노트만 3권이나 되니 그가 없었다면 지역향토사는 여전히 암중모색 중이었을 듯싶다.

"이제 나이가 들어 옛날만큼 발품을 팔지 못한다"는 주 원장은 "지금껏 열심히 모은 자료들을 정리해 저술 등을 통해 '부산 역사알리기' 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지역향토사 연구는 진행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