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 연고 없이 부산행
- 입소문에 즉석캐스팅 0순위
- 부산, 영화 아닌 '영화제 도시'
- 기초예술분야 다질 방안 시급
기회만 있으면 요즘 젊은이들은 서울로 향한다. 일자리든 뭐든 심지어 취업을 위한 전문학원과 유학을 위한 GRE학원도 모두 서울에 있으니까. 하지만 요즘 추세에 반해 허우대 멀쩡한 30대 중반의 서울내기가 2년 전부터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보따리를 풀었다. 이유는 단 하나. 부산이 좋아서다.
배우 이동규(34). 평단에선 카리스마 있는 연기파 배우로 통하지만 장삼이사들은 이름만으론 잘 모를 듯싶다. 사진이나 실물을 봐야 '아! 이 사람'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는 부산에서만 촬영해 화제를 모았던, 지난 9월 막을 내린 의학드라마 '골든타임'에서 부산여자 송선미의 약혼자로 출연해 사투리를 능청스럽게 구사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가을 종영한 드라마 '계백'에서 김춘수 역을 맡았다. 영화도 '와일드카드' '기담' '레드아이' 등 열 편, 연극도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내일은 챔피언' 등 다섯 편, 무용도 홍신자무용단의 '시간속으로' 등 네 작품에 출연, 기본기가 탄탄한 다재다능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썩 잘나가지는 않지만 운발만 받으면 충분히 뜰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그가 캐스팅 등 모든 점에서 불리한 부산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뭘까.
"심신이 지쳤다 싶으면 해운대를 찾았어요. 그러면 이상하게 힘이 났어요. 작품을 마치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부산을 찾아 현재 처한 상황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고민하며 재충전을 한 곳도 부산이었어요. 부산 출신 친구들과도 죽이 잘 맞아 전생에 부산사람이었나 봅니다."
이동규는 2년 전 배우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 "1999년 데뷔해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태생적으로 '선택 받는' 직업이잖아요. 문득 끌려다니지 않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부산 정착의 계기였지요."
그는 1년 정도의 고민 끝에 오래전부터 동경해왔던 부산행을 결심했고 마침내 2010년 7월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 정착했다. 해운대 달맞이언덕 쪽에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는 그는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고, 5분만 걸으면 바다와 만나는 이런 곳에 살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부산처럼 살기 좋은 곳은 지구 상에 없는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서울서 초·중·고를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를 졸업한 그는 2년 전 해운대 신시가지에 대입 전문연기학원 'Way 2 Act'를 열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학구파로 불리는 그는 서울서 후배들을 강사로 초빙해 연기·무용·보컬(성악)·작품분석 등 연기 사관학교로 불리는 한예종의 괜찮은 커리큘럼을 차용해 운영하고 있다.
"횟수로 3년째 운영 중입니다. 지난해 원생들의 91%를 대학에 합격시켰지만 올해는 아마 100% 합격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동규의 부산 정착이 충무로와 방송가에 입소문이 돌면서 그는 최근 부산에서 촬영하는 드라마와 영화의 즉석 캐스팅 0순위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최근 끝난 '골든타임'도 평소 아는 연기자·스태프들과 술자리를 하다 이틀 전에 캐스팅됐고, 촬영 2시간 전에 "사투리 연기인 거 아시죠"라는 말을 들었단다. 하여튼 그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일이 더 많고 덩달아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에로틱 스릴러 '롤플레이'는 올해 말 개봉 예정이다.
부산서 부산 여자를 만나 부산에 살고 싶다는 그는 부산에 대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부산은 영화를 촬영하고 지원하는 곳이지 영화사가 있어 주도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곳은 아닙니다." '영화의 도시'가 아니라 '영화제의 도시'라는 것이다. 영화 인재는 찾기 어렵고 그들을 육성할 시스템 또한 부족해 멀리 봐도 영화의 도시는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 기초예술분야를 탄탄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이 우선 절실한 것 같습니다. 부산시와 대학들도 이러한 토대하에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