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직교사 시간 쪼개 7권 발간
- 평론 화두는 집·길로 압축
- 한국현대소설 100편 분석
- 발자국 따라 삶의 궤적 보여

동양에서 인생은 곧잘 길에 비유된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가사가 들어간 가요도 있고 길을 화두로 삼은 문학 작품도 수없이 많다. 이규정의 '멀고도 먼 길', 김헌일의 '먼 길', 박향의 '먼 길', 윤후명의 '미혹(迷惑)의 길' 같은 부산·경남지역 소설가가 쓴 작품만 해도 적지 않다.

제목에 '길'이 들어간 한국현대소설을 100편 가까이 분석해 길의 의미를 찾는 부산지역 문학평론가가 있다. 하창수 문학평론가(57·부산서여고 교사)는 2010년 '길의 궤적'에 이어 최근 '길의 현존'(도서출판 전망)이라는 평론집을 냈다. 그는 현재 길과 관련한 평론을 마무리 짓는 '길의 향방'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앞서 그는 '집의 지형', '집의 지층'이라는 평론집 두 권을 냈다. 그가 낸 평론집은 모두 7권.

그의 평론 화두는 집과 길로 압축된다. 그는 12일 "인간의 일상생활 대부분이 집과 길이라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며 "소설이 다루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이라면 소설은 집과 길에 결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평론집 책머리에 '인간의 생존은 길 위에서의 유동과 집 안에서의 정주로 이루어진다. 길은 집과 집을 이어주고, 더 넓은 세상으로 인간의 삶을 확장시킨다'고 썼다.

길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 "삶은 곧 길이 되고, 길은 곧 삶이 된다"며 "길을 살피는 것은 곧 삶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에는 길을 걷는 사람의 삶이 녹아들어 있어요. 길을 들추면 그러한 삶이 드러날 수밖에 없죠. 우리 삶의 모습도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의 집적이에요. 한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그가 하는 말보다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이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저의 삶이나 문학 세계도 그러한 궤적을 벗어나지 못해요."

그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한 길의 변화에 대해 지적했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자연스러운 길은 곧고 넓은 인위적인 길로 바뀌었어요. 산을 깎아 길을 내고 물을 메워 다리를 세운 거죠. 시간을 단축하고 속도를 증대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아요."

그가 이 같은 문학과 삶의 고민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어떻게 전하고 가르칠지 궁금했다. "학교 수업은 현실적으로 교과서나 문제집에 얽매이기 마련입니다. 될 수 있으면 작품을 풀이할 때 사실적인 부분에서 시작해서 인생관이나 세계관으로 확장해 해석하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쫓기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현직 교사로서 학교 수업과는 별도로 시간을 쪼개 평론집 7권을 내는 작업이 간단치 않아 보였다. 그는 "현장비평을 일절 하지 않고 숨어 지내다시피 하면서 집과 길에 관한 평론을 쓰는 데 몰두했고, 외부 기고도 최근까지 거절해 왔다"고 말했다.

경남 창녕 출신인 하 평론가는 부산대 국어교육학과와 대학원(석사)을 졸업했으며 1981년부터 교편을 잡고 있다. 1983년 부산지역 무크지 '지평'을 통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윤택 연극연출가, 남송우 부산문화재단 대표, 최영철 시인, 강선학 미술평론가, 조갑상(경성대)·민병욱(부산대)·구모룡(한국해양대) 교수 등 내로라하는 인사와 '지평' 동인 활동을 같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