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磨崖) 조각가 정용성 씨. 최근 완성한 경북 청도군 대비사의 마애석가모니불 등 국내 유명 사찰의 마애불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이민용 기자

"마애(磨崖)의 매력은 모든 예술적 요소에 자연의 빛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26일 만난 마애 조각가 정용성(52) 씨는 국내에서는 몇 안 되는 마애 전문 예술인답게 마애 조각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마애는 자연암벽에 부조나 선각으로 새긴 작품을 일컫는 것. 대부분 불상을 새긴 마애불로 더 친숙하다. "마애는 자연바위면을 이용하는 예술활동이어서 공공시설물의 작품이나 불교 사찰에서 불상을 새기는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소재 특성상 작품 활동도 쉽지 않고 대중성도 없어 마애 작품만을 고집하는 작가는 희귀종"이라며 웃었다.

경남 양산시 상북면에서 자신의 호를 딴 '여산(如山)불교조각연구소'를 운영하는 그는 마애 작품에 대한 예술혼을 강조했다.

"마애는 거대한 자연석에 새기는 작업이어서 틀리면 지우고, 맘에 들지 않으면 새로 작품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지요. 티끌만큼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을뿐더러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가까이 한 작품에 매달려야 하는 노고와 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는 30년 가까이 20여 점의 마애불을 완성했다. 국내 유명 사찰의 마애불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부산 해동 용궁사 약사여래를 비롯, 양산 천불사 마애미륵반가사유상, 부산 감로사 마애삼존불, 거제 총명사 마애삼존불, 하동 쌍계사 삼존불, 최근 완성한 경북 청도군 대비사의 마애석가모니불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2000년 제18회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에서 미술대전 사상 처음으로 마애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받으며 마애예술가로 인정을 받았다. 당시 출품작은 경주 남산의 돌에 관세음보살좌상을 조각한 '원(願)'이었다. "최초로 마애작품을 출품하고 대상을 받으면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실상 마음속으로는 마애작품에 대한 편견을 넘어 예술로서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산 태생인 그가 마애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지금의 부산디자인고교인 부산공예학교에 입학했다. "원서를 접수하기 전에는 도예와 미술을 전공할 생각이었지만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석공예반에서 들려오는 돌 쪼는 소리에 이끌려 무작정 석공예를 지원했지요."

편한 길을 두고 굳이 마애 예술이라는 화두를 거머쥔 그가 심신이 피곤할 때면 찾는 곳이 있다. 경주 남산에 있는 신선암 마애불이다. 그는 "신선암 마애불이야말로 주위 배경과 빛의 흐름에 따라 완벽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신선암 마애불은 나를 예술의 경지로 이끄는 스승이자 예술혼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