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꼿꼿이 세울 건(廴-6)덕덕(彳-12)같을 여(女-3)나약할 투(人-9)
6월 10일,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제33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렸다. 이곳에서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과 박종철 열사를 비롯해서 이 땅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썼던 수많은 선비, 학생들이 고문당하고 희생되었다. 이제는 민주인권기념관이 된 그곳의 유동우 관리소장은 “끌려온 사람들의 고립감과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1919년, 서울에서 시작된 3·1 독립만세 시위는 전국으로 퍼져갔다. 3월 10일, 광주에서도 장날을 기해 1000여 명의 민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전라남도 順天(순천)의 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광주 수피아여고에 재학 중이던 윤형숙(1900~1950)도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대의 맨 앞에 서서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 헌병이 내리친 칼에 왼팔이 잘렸다. 윤형숙 열사는 일본 헌병에 체포돼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오른쪽 눈마저 잃었다.
1920년대 조선의 풍속을 소재로 다양한 목판화를 남긴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의 작품 가운데 ‘미망인’이 있다. 이 여인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소개했다.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여인은 북부 지방 출신이다. 그녀는 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고, 외아들 역시 3·1운동에 적극 가담해서 일본 경찰에 끌려가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그림 속 여인은 조선의 평범한 아낙네다. 그런데 독립운동가라니. 1919년의 독립만세 시위는 총칼을 들고 막아선 일제의 헌병과 경찰들 앞에서 벌인 평화적 시위였다. 그것은 4·19 학생의거,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쳐 2016년 겨울의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노자가 “建德如偸”(건덕여투) 곧 “꼿꼿이 세운 덕은 자빠질 것 같다”고 한 말은 그대로 조선 선비들의, 여인들의, 민중의 덕을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폭력과 강압, 횡포에도 덕으로 맞설 줄 아니, 이야말로 建德(건덕) 아닌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