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禾-2) 본받을 숙(水-8) 어조사 저(言-9) 남인(人-0)
맹자가 당대 사람들과 전혀 다른 인식, 혁명적인 사유를 했음은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 곧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는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공자조차 이런 인식에 이르지 못했고, 맹자 이후에도 이런 인식을 가진 지식인은 극히 드물었다. 심지어 신분제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신분제적 시각으로 시민이나 민중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으니. 맹자는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사유를 할 수 있었던가? ‘絶學(절학)’했기 때문이다.
맹자가 누구로부터 배웠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맹자’ ‘離婁 下(이루 하)’에 나오는 발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君子之澤五世而斬, 小人之澤五世而斬. 予未得爲孔子徒也, 予私淑諸人也.”(군자지택오세이참, 소인지택오세이참. 여미득위공자도야, 여사숙저인야) “군자의 유풍은 다섯 세대가 지나면 끊기고, 소인의 유풍도 다섯 세대가 지나면 끊긴다. 나는 공자의 문도가 되지 못했으나, 그 유풍을 이은 사람을 통해 공자의 학문을 본받았다.”
‘私淑(사숙)’이란 말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사숙은 직접 만나서 배우지 않고 홀로 그 가르침을 본받으며 배우고 익히는 것을 뜻한다. 이로써 보면, 맹자는 특정한 인물에게서 배운 게 아니라 당시에 전하던 공자의 학문을 스스로 본받고 터득했음을 알 수 있다. 훌륭한 스승이 없었다는 그 점이 맹자로 하여금 스스로 터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셈이다.
스스로 터득했다는 것은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배울 뿐만 아니라 배운 바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거나 따르지 않고 스스로 경험을 통해 옳음과 그름, 사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 따위를 검증하며 깨달았다는 뜻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음은 군자나 소인의 유풍, 곧 감각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취가 다섯 세대가 지나면 끊긴다고 한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이는 맹자가 공자의 學問(학문)과 斷絶(단절)되어 있었음을, 絶學(절학)의 상태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그의 사상이 공자와 사뭇 다르고 독창적이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