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위(爪-8)길도(辵-9)것자(老-5)날마다 일(日-0)덜손(手-10)
공자는 ‘多聞闕疑(다문궐의)’와 ‘多見闕殆(다견궐태)’, 곧 많이 듣고 많이 보되 의심나는 것과 위태로운 것은 제쳐두라고 했다. 여기서 多聞(다문)과 多見(다견)은 노자가 “學者日益”(학자일익) 곧 “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일이다”라고 한 말과 통한다. 많이 듣고 많이 보는 것이 곧 배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심나는 것, 위태로운 것을 제쳐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듣고 본 것 즉 배운 것을 요모조모 살피고 따지며 물어서 그 실상을, 그 참뜻을 알려고 해야 한다.
그런데 듣고 본 것이 많을수록 다 헤아릴 수 없고 모조리 다 알 수도 없다. 반드시 미심쩍은 채로, 긴가민가한 채로 남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것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니 모르는 것으로 여겨야 마땅하다. 만약 안다고 여긴다면, 자신을 迷妄(미망) 속에 가두고 삶을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배움이 많을수록 제쳐둘 줄 알아야 허물도 후회도 적어진다.
말과 행동에서 허물도 뉘우칠 일도 적어지면, 그것으로 배움이 완성되는 것일까? 아니다. 공자는 “祿在其中矣”(녹재기중의) 곧 “녹봉이 그 안에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렇다. 고작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 줄 뿐이다. 진정한 행복까지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복잡하고 급변하는 이런 시대를 오래도록 무탈하게 살려고 한다면, 지식만 습득해서는 살아가기 힘들다. 참된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노자가 “爲道者日損”(위도자일손) 곧 “도를 닦음은 날마다 더는 일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예부터 많이 배워서 많이 알았던 지식인들, 관리들이 과연 잘 살았는가? 오늘날 복잡하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을 누구보다도 잘 습득하고 이용하는 지식인들이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왜 “아는 게 병이다”라는 말을 할까? 재물이 많고 권력을 가진 자가 다 잘살던가? 왜 지식이 많고 재물이 많음에도 잘 사는 이가 드물까? 더할 줄만 알고 덜 줄 몰라서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