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 군(口-4)옳을 가(口-2)스스로 자(自-0)가질 취(又-6)

221년, 蜀漢(촉한)의 황제가 된 유비는 아들 유선을 태자로 봉했다. 그런데 2년 뒤, 荊州(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가 오만하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孫權(손권)의 東吳(동오)와 잇달아 마찰을 일으켰다. 이윽고 제갈량의 경고를 무시하고 방비를 소홀히 하다가 동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고 형주도 빼앗겼다. 형주는 촉한의 전략 요충지였다. 제갈량은 이곳을 지키며 동오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벌을 감행할 원대한 책략을 세웠던 터였다. 제갈량은 촉한에 위기가 닥쳤음을 감지했다.

그런데 제갈량과 달리 황제 유비는 촉한의 흥망과 북벌의 大計(대계)보다 관우의 죽음을 더욱 중시했고, 복수를 다짐했다. 제갈량의 만류를 뿌리치고 삼군에 상복을 입히고는 동오 정벌을 감행했다. 유비의 군대는 거의 궤멸되었고, 유비는 간신히 白帝城(백제성)으로 도망쳤다. 울화병으로 병세가 심해지자, 유비는 제갈량을 불러 뒷일을 부탁했다.

“君才十倍曹丕, 必能安國, 終定大事. 若嗣子可輔, 輔之, 如其不才, 君可自取.”(군재십배조비, 필능안국, 종정대사. 약사자가보, 보지, 여기불재, 군가자취) “그대의 재능은 조비의 열 배는 되니 틀림없이 나라를 안정시키고 끝내 큰일을 이룰 것이오. 만약 후계자가 보좌할 만한 사람이면 보좌하고, 그만한 재능이 없다면 그대가 스스로 나라를 취하시오.”

유비의 자는 ‘玄德(현덕)’이다. 현덕은 현묘한 덕이라는 뜻이다. ‘도덕경’에서 핵심이 되는 ‘玄(현)’자가 붙었으니, 유비가 노자의 철학에 걸맞은 덕을 갖춘 것처럼 여겨진다. 제갈량에게 당부한 말에도 그런 덕이 묻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사사로운 복수에 온 나라를 걸었고, 대패하여 울화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참으로 제갈량이 나라를 넘겨받기를 바랐을까? 아니다. 제갈량이 그러지 않을 줄 알면서 그렇게 말했다. “신은 온 힘을 다해 충정을 바치며 죽을 때까지 이어 가겠습니다”라는 대답을 이끌어내려고. 이런 유비가 ‘현덕’의 영웅일 수 있을까? 교활하고 영악한 호걸이라면 모를까.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