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은 일 임(人-4)무거울 중(里-2)길도(辶-9)멀원(辶-10)
도덕경 죽간본‘ 21-2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重積德, 則亡不克; 亡不克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중적덕, 즉무불극; 무불극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거듭 덕을 쌓으면 이겨내지 못할 게 없고, 이겨내지 못할 게 없으면 그 끝장을 알 일이 없다. 끝장을 알 일이 없어야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는 이 말은 아마도 모든 정치가를 설레게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대목에서 가장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글자는 바로 ‘重(중)’과 ‘積(적)’이다.
이 두 글자는 같이 쓰이기도 했지만, 같이 쓰이지 않더라도 본디부터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먼저 ‘重(중)’을 보자. 중은 크게 두 가지 뜻 곧 ‘무겁다’와 ‘거듭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얼핏 보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중은 본디 사람이 짐을 짊어진 형상의 글자다. 짐이 그냥 짐이겠는가. 겹겹이 쌓아 올린 짐이다. 그래서 무겁고, 積(적)과도 연결된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산에서 나무를 해 불을 땠다. 그 옛날 한국의 산이 민둥산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시절 나무하러 가서 한 짐 해가지고 온다는 말은 나무와 가지 따위를 어른 키만큼 쌓아올린 지게를 지고 온다는 뜻이었다.
생각만 해도 무겁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데, 重(중)에는 실로 그런 뜻이 담겨 있다. 그저 ‘男兒一言重千金(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흔하게 내뱉는 말 따위로 말미암아 퇴색해버린 그런 가벼운 무게 따위와는 견줄 수 없는 무거움이 담겨 있다.
‘논어’에 曾參(증삼)이 한 말이 실려 있다.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 인이위기임, 불역중호? 사이후이, 불역원호?) “선비란 마음이 너르거나 굳세지 않을 수 없으니, 해야 할 일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어짊을 제 일로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끝나니, 또한 멀지 않은가?” 증삼이 말한 그런 무게, 죽은 뒤에나 내려놓을 수 있는 그 무거움이 ‘重(중)’에 실려 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