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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498> 豫斷速斷

미리 판단하고 서둘러 결단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0-06 20:03:32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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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 예(豕-9) 가를 단(斤-14) 빨리 할 속(辵-7)

우리나라에서는 공소를 제기할 때에 공소장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공소장에는 피고인의 성명과 기타 피고인을 특정할 수 있는 사항, 죄명, 공소사실, 적용되는 법 조목을 기재해야 하며, 공소사실은 범죄 장소 및 일시, 방법 따위를 분명하게 기재해야 한다. 그런데 조국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에 대한 기소장에는 “피고인은 성명불상자 등과 공모하여 … 대학원 진학 등을 위해 행사할 목적으로 … 총장 명의의 표창장 1장을 위조하였다”라고 적혀 있었다. 범죄 장소와 일시, 방법 따위도 불분명한 데다 성명불상자 등과 공모했다고 한다. 이런 공소장으로 어떻게 기소한단 말인가? 검찰 스스로도 그렇게 여겼기에 이 공소장을 오랫동안 비공개로 해왔던 것 아닌가?

수사 결과 충분한 혐의가 입증되고 소송 조건을 갖춘 경우에 공소를 제기해야 함은 누구보다도 검찰이 잘 알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토록 불분명하고 부적절한 공소장으로 기소한 까닭은 무엇일까?

검찰은 애초에 정경심 교수를 소환해서 조사하지도 않고 기소를 했다. 기소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기소한 뒤에 수없이 번복된 수사 내용은 어찌 된 것인가? 아마도 몇 가지 분명한 사실을 가지고 豫斷(예단)한 것이리라. 그런데 대대적으로 수사 인력을 투입했음에도 그 예단을 확정해줄 근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틀렸을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기울고 있는 모양이다. 얄팍하게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예단은 곧 速斷(속단)이다. 예단이든 속단이든 아무리 신중히 해도 推測(추측) 아니면 臆測(억측)이다. 평범한 사람도 예단하거나 속단했다가 그 판단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면,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기 쉽지 않다. 속된 말로 ‘쪽팔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만하거나 오만한 사람이 자신의 예단이나 속단을 근거로 자신만만하게 행동했다가 그 판단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내 생각에, 검찰은 지금 그런 지경에 처한 듯하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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