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를 의(羊-7) 전쟁 병(八-5) 맞받을 응(心-13)
1868년부터 明治(메이지) 천황을 떠받든 일본은 패권 국가로 가기 위해 조선을 제물로 삼아 앞서(<465>) 언급했던 ‘문자’의 두 가지 전쟁, 곧 남의 토지를 이롭게 여기고 남의 재화를 바라서 일으키는 ‘탐욕에 의한 전쟁’과 제 나라가 큰 것을 믿고 제 인민이 많은 것을 뽐내어 상대국보다 더 낫게 보이려는 ‘교만에 의한 전쟁’을 거듭 일으켰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더욱더 교만해졌고, 노골적으로 조선을 집어삼키려 했다. 이에 대해 조선의 인민은 庚戌國恥(경술국치)로 나라를 잃기 전부터 일본에 맞서 싸웠다. ‘문자’ ‘도덕’에서 말했다. “誅暴就弱, 謂之義; 敵來加己, 不得已而用之, 謂之應.”(주포취약, 위지의; 적래가기, 불득이이용지, 위지응) “포학한 자를 죽이고 약한 자를 구하는 것을 ‘올바른 전쟁’이라 하고, 적이 와서 나를 침범하므로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쓰는 것을 ‘맞서 싸우는 전쟁’이라 한다.” 조선의 인민이 일제에 무력으로 싸웠든 비폭력으로 맞섰든 그 일은 모두 포학한 자를 죽이고 약한 자를 구하는 義兵(의병)이었고, 적이 와서 나를 침범하므로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쓰는 應兵(응병)이었다. 이미 300년 전에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에도 조선의 인민은 올바른 전쟁, 맞서 싸우는 전쟁을 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본 역사에서는 이러한 의병과 응병이 거의 전무했다. 게다가 일본의 인민은 將軍(쇼오군)의 정부인 幕府(바쿠후)의 통치와 명령에 철저하게 복종하도록 수백 년 동안 길들어 있었고, 메이지 유신에서는 그 대상이 천황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오랜 바쿠후의 통치를 거치면서 일본에서는 上命下服(상명하복)이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았고, 인민에게는 一絲不亂(일사불란)이 강요되었다. 이에 익숙했던 일본의 위정자들은 조선의 왕을 압박하고 賣國(매국) 대신들을 회유하여 합병조약에 조인하기만 하면, 조선의 식민지화가 일단락되고 조선 인민도 무조건 복종하리라 여겼다. 그것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 조선 인민의 심리와 기질에 무지했음을 의미할 뿐이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