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밝을 명(日-4) 길도(辵-9) 자기 자(自-0) 비추어 볼 감(金-14)

‘문자’ ‘上仁(상인)’에 나온다. “生而貴者驕, 生而富者奢.”(생이귀자교, 생이부자사) “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은 교만하고, 나면서부터 가멸찬 사람은 건방지다.”

누구도 富貴(부귀)를 사람의 本性(본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부귀를 누리고 싶어 하는 욕망, 부귀한 존재가 되려는 의지, 부귀해질 수 있는 능력 따위는 분명 사람의 본성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부귀 자체를 본성이라 말하는 이는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부귀는 옷과 같은 것으로, 사람의 몸에 덧씌워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보라. 그 아기의 어디에 부귀가 묻어 있는가. 아기의 부귀는 그 부모, 그 집안의 부귀를 따를 뿐, 전혀 그 아기의 본성이 아니다. 그럼에도 부귀를 본성인 것처럼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특히 고귀한 가문에 태어나거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란 이들이 부귀를 본성인 것처럼, 심지어는 天命(천명)인 것처럼 여긴다. 아니, 확신한다. 거기서 교만은 쑥쑥 자라고 건방은 덩굴처럼 온몸에 퍼진다.

사실 부귀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교만하지 않고 건방지지 않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부귀한 집 자제가 으스대고 뽐내면, 여느 사람들은 그런 꼴을 아니꼽게 보기는 해도 부자연스럽다고 보지는 않는다. 반면에 부귀한데도 잘난 체하지 않거나 겸손한 이를 얼마나 대단하게 여기는가. 부귀로부터 교만과 건방을 떨쳐내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안다는 뜻이리라. 그 때문일까? ‘문자’ ‘상인’에서는 위의 말에 이어 다음 말을 덧붙이고 있다. “故富貴不以明道自鑒, 而能無爲非者, 寡矣.”(고부귀불이명도자감, 이능무위비자, 과의) “그러므로 부귀한 사람이 밝은 도로써 자신을 비추어 보지 않고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아, 어쩌면 부귀는 본성이 아닐지라도 부귀로 말미암아 교만해지고 건방지게 구는 것은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밝은 도로써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만 간신히 벗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