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릴 배(肉-5)은혜 은(心-6)잊을 망(心-3)덕 덕(彳-12)
‘논어’ ‘憲問(헌문)’에 나온다. 누군가가 공자에게 물었다. “以德報怨, 何如?”(이덕보원, 하여?) “원한을 덕으로써 갚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 “그렇다면 덕은 무엇으로 갚으려 하오? 원한은 곧음으로써 갚고, 덕은 덕으로써 갚는 법이오.”
이 문답을 통해 ‘원한’에 대처하는 공자와 노자의 자세가 사뭇 다름을 볼 수 있다. ‘以德報怨’(이덕보원)은 ‘도덕경’ 63장에 나오는 ‘報怨以德’(보원이덕)과 같은 말이다. 그렇다고 ‘以德報怨’(이덕보원)을 노자가 한 말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경구였을 수도 있다. 원한을 덕으로써 갚는다고 하는 그 지고한 관용의 경지가 노자의 주장과 잘 부합된다는 판단에서 후대에 ‘도덕경’을 필사하거나 편찬하던 이가 덧붙였을 수도 있다. ‘죽간본’에는 이 구절이 나오지 않고, ‘도덕경’에서도 앞뒤 맥락을 따져보았을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구절은 아닌 듯 보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원한을 덕으로써 갚는’ 자세가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공자가 말한 ‘以直報怨’(이직보원) 곧 ‘원한을 곧음으로써 갚는’ 자세에는 분명 가깝다고 할 만하다. 곧음이란 옳은지 그른지 따져 판단한 뒤 선택한 자세요 행동 방식이다. 이는 원한이라는 깊은 응어리, 뒤틀리고 응등그러진 마음을 냉철한 이성으로 추스르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일본과 외교관계를 끊었던 조선이 에도 막부의 간청에 따라 국교를 재개한 과정이 그러했고, 일제 강점을 거친 뒤 한국 정부와 한국인이 가졌던 태도도 그러했다.
반면에 오랜 세월 이 땅에서 건너간 渡來人(도래인)들 그리고 이 땅과 외교를 맺고 교역하면서 선진 문물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받았던 일본은 ‘以德報德’(이덕보덕) 즉 ‘덕을 덕으로써 갚지’ 않고 ‘以怨報德’(이원보덕) 즉 ‘원한 살 일로써 덕을 갚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이보다 더한 背恩忘德(배은망덕)은 인류 문명사를 다 뒤져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