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 귀신 기(示-4) 비탈질 타(阜-5) 모름지기 수(頁-3) 이를 달(辵-9)

본래 백만장자(millionaire)와 억만장자(billionaire)를 뜻하는 영어 표현은 그저 수치로 나타낸 재산가일 뿐이다. 그런데 이를 번역하면서 ‘富者(부자)’가 아닌 ‘長者(장자)’를 덧붙였는데, 그 의미가 심장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본과 한국에서 그렇게 쓴다. 중국에서는 ‘富翁(부옹)’이라는 말을 붙여 ‘億萬富翁(억만부옹)’이라 부르므로 별 다른 의미가 더해지지 않았다.

長者(장자)는 본래 중국에서 나이가 많은 어른이나 존귀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의미가 붙었다. 옛날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 사회적으로 세력이 있고 부유한 사람을 가리켜 장자라 했다. 나중에 불교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더해졌다.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고 재산과 덕행을 아울러 갖춘 佛者(불자)를 장자라 불렀다. 이런 의미의 장자는 불교 경전들에 자주 등장한다.

한국에서 널리 읽히는 ‘금강경’의 배경은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인데, ‘기수’는 祇陀(기타) 태자의 숲을 뜻하고 ‘급고독원’은 급고독의 장자 須達(수달)이 보시한 동산을 뜻한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수달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머물 만한 땅을 보시하고 싶었는데, 마침 기타 태자가 아름다운 숲을 갖고 있었다. 수달은 팔라고 간청했으나, 그 숲을 사랑했던 태자는 결코 팔려고 하지 않았다. 수달이 하도 끈질기게 간청하자, 태자가 농담처럼 “기수 땅 전체를 금으로 깐다면 팔겠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수달은 환하게 웃으며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는 금은보화가 가득한 창고를 열었다. 그리고 기수 땅 전체에 금을 깔았다. 이 소식을 들은 태자가 놀라서 달려와 “아까 말은 농담이었소!”라고 했으나, 진지한 수달을 보고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고 수달의 그런 지극함이 부처님에게 감화되었기 때문임을 안 태자는 수달과 상의해서 그 땅을 부처님께 보시하고 땅에 깐 수달의 금으로 가람을 지었다고 한다. 이렇듯이 장자는 도타운 덕을 갖춘 부자를 이른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