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를 정 (止-1)만날 합 (口-3)구부릴 기 (大-5)이길 승 (力-10)

노자가 말한 奇(기)는 단순히 正(정)과 짝이 되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奇(기)를 ‘구부림’으로 풀이했는데, 펴지지 않고 구부려져 있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구부릴 만하면 구부리고 펼 만하면 펴는, 즉 구부림과 폄을 자유자재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奇(기)다. 이를테면 법칙이나 원칙을 터득한 뒤에 이를 유연하게 적용하거나 다채롭게 활용하는 것을 이른다. 그러므로 奇(기)는 正(정) 곧 바름을 바탕으로 한 구부림이다.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凡戰者, 以正合, 以奇勝”(범전자, 이정합, 이기승) 곧 “무릇 전쟁은 바름으로 적과 마주하고 구부림으로 이긴다”고 말했다. 正(정) 곧 바름을 바탕으로 했을 때, 奇奇妙妙(기기묘묘)하게 臨機應變(임기응변)해서 이긴다는 뜻이다.

흔히 ‘兵不厭詐(병불염사)’ 즉 “전쟁에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때의 속임수는 곧 기발하고 기묘한 계책을 이른다. 이 속임수는 상대에 따라 상황에 맞게 한껏 구부린 것이어서 좀처럼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발하고 기묘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어떠한 법칙이나 원칙도 없는 것이 아니다. 구부린다는 말 자체가 이미 구부릴 만한 대상을 전제로 한 것이다. 당연히 구부림의 대상은 법칙 또는 원칙으로서 正則(정칙)이다.

정칙을 곧이곧대로 쓰는 것은 구부림이 아니고 바름도 아니다. 정칙이 아무리 바른 것이라 하더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應用(응용)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 그 정칙은 定則(정칙) 곧 고정된 법칙, 죽은 법칙이 되어버린다. 그런 법칙은 딱딱하게 굳어버린 떡과 다르지 않다.

구부림이란 법칙이란 법칙, 원칙이란 원칙을 죄다 써먹는 일이다. 이기는 데 효과적이고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어떤 법칙이든 누구의 원칙이든 기꺼이 活用(활용)한다. 이미 폐기처분된 법칙이라도 되살려서 써먹는 것이 구부림이다.

그러므로 이 구부림에서는 고정된 법칙도 정해진 법칙도 없다. 있다면, 고정되거나 정해진 법칙이 없다는 것이 곧 유일한 법칙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