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천간 정(一-1)소 축(一-3)내려올 하(一-2)성 성(土-7)

임진왜란은 명나라를 흔들고 조선을 어지럽히며 동아시아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그 틈을 타서 만주족의 後金(후금)이 세력을 확장했다. 후금이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인 1623년에 ‘仁祖反正(인조반정)’이 일어났다. 광해군이 명나라를 배신하고 ‘廢母殺弟(폐모살제)’했다는 죄목을 걸었던 정변이다.

정묘년(1627)에 한 번 침략했으나 여의치 않았던 후금은 국호를 大淸(대청)으로 고친 1636년 겨울, 龍骨大(용골대)에게 군대 10만여 명으로 조선을 치게 했다. 압록강을 넘은 지 닷새 만에 한양을 유린하고, 이레 만에 왕과 대신들이 피란해 있던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朔風(삭풍)보다 더 빠르고 거센 공격 앞에서 조선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간신히 버티던 인조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인조실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丁丑年(정축년, 1637) 1월 30일, 용골대와 馬夫大(마부대)가 성 밖에 와서 인조의 出城(출성)을 재촉했고, 인조는 백마를 타고 시종 50여 명만 거느린 채 성을 나섰다. 인조가 산을 내려가 자리를 펴고 앉자, 이윽고 청나라 군사 수백 騎(기)가 달려왔다. 용골대가 인도하는 대로 인조는 삼공 및 판서·승지 각 5인, 翰林(한림)·注書(주서) 각 1인을 거느리고, 세자는 侍講院(시강원)·翊衛司(익위사)의 諸官(제관)을 거느리고 三田渡(삼전도)에 따라 나아갔다.

용골대는 북쪽을 향해 마련한 자리로 인조를 이끌었다. 그리고 인조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했다. 실록에서는 “上行三拜九叩頭禮”(상행삼배구고두례)라고 간단하게 적고 있다. 小中華(소중화)라 자부하며 만주족을 오랑캐라 멸시했던 조선의 왕이 오랑캐의 칸에게 항복하고 신하의 예로써 절했으니, 그 치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이것이 ‘삼전도의 屈辱(굴욕)’이다.

그런데 당시 인조는 降伏(항복)했음에도 ‘성을 내려왔다’는 뜻의 ‘下城(하성)’으로 표현할 것을 고집하며 신하들에게도 강요했다. 이른바 ‘정축년에 남한산성을 내려왔다’는 ‘丁丑下城(정축하성)’이다. 이 얼마나 비루한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