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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210> 成而弗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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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09 19:54:05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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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룰 성(戈-3)말 이을 이(而-0)아닐 불(弓-2)머물 거(尸-5)

만물은 일어나지만 다스리려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면서도 뻗대지 않는다. 다스리지 않고 뻗대지 않는다는 것은 흐름을 따르고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면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이룸 또는 이루어짐도 한때의 현상일 따름이어서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래서 만물은 “成而弗居”(성이불거) 곧 “이루어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果實樹(과실수)를 보라. 사람의 손길이 닿았든 닿지 않았든 간에 좋은 땅에서 비바람을 잘 견디고 빛을 담뿍 받은 나무라면 때맞게 과실을 맺는다. 그 과실은 새가 날아와서 쪼기도 하고 인간이 따서 가져가기도 한다. 가지에 걸려 있는 과실도 점점 물러지고 끝내 썩어서 떨어진다. 어떠한 경우에도 과실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다. 이렇게 나무는 과실을 맺더라도 애써 붙잡아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계절이 한 번 돌면 다시 새잎을 내고 새로 열매를 맺는다. 이를 두고 노자는 “夫唯弗居也, 是以弗去也”(부유불거야, 시이불거야) 곧 “결코 머물지 않으니, 이런 까닭에 떠나지도 않는다”고 표현했다.

가지에 열매가 맺힌 채로 있다면, 계절이 몇 차례 돌고 돌아도 새로 열매가 맺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맺힌 열매도 가지에 매달린 채 썩어가고 새로 열매도 맺지 못한다면, 그 과실수가 과실수이겠는가? 탐스러운 과실, 먹음직스런 열매를 맺어서 과실수라는 이름과 존재 가치를 얻었는데, 과실을 새로 맺지 못한다면 과실수라는 이름도 무색해지고 존재 가치도 사라진다. 과실수로 머물러 있으려다 과실수라는 이름을 저버리고 과실수의 세계에서 떠나버리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과실수를 비롯한 나무들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짐승들도 마찬가지다. 새끼를 낳아 길러도 때가 되면 홀로 서도록 내버려 둔다. 내 배에서 나온 것이니 언제까지나 내 것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나무가 잎들을 떨구고 앙상해지는 것도, 스스로 날 수 있고 달릴 수 있게 되면 어미가 새끼를 떠나보내는 것도 모두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 이치를 외면하는 것일까? 정말 모르는 것일까?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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