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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201> 賈誼過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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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29 20:43:06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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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가(貝-6)옳을 의(言-8)나무랄 과(辵-9)나라 이름 진(禾-5)

진시황은 영원한 제국을 꿈꾸었으면서도 無爲(무위)할 줄을 모르고 오로지 有爲(유위)하면서 有爲之事(유위지사)를 일삼다가 과로해서 죽음을 재촉했다. 그 자신의 꿈과 달리 통일 제국의 황제로서 재위한 연수가 고작 10여 년에 지나지 않았으니, 숨을 거두기 직전 진시황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제국의 미래가 걱정되어 애달았을까? 참으로 허무하고 허망하게도 제국 또한 곧장 그를 뒤따랐다.

사마천은 ‘사기’에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를 두고 그 끝에 賈誼(가의, 기원전 200∼기원전 168)의 <過秦論(과진론)>을 덧붙여둠으로써 자신의 논평을 대신하게 했다. ‘과진’은 진나라의 과실을 비판한다는 뜻이다. 이 글은 진나라가 흥하고 망하게 된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그 관점과 견해는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秦王懷貪鄙之心, 行自奮之智, 不信功臣, 不親士民. 廢王道, 立私權, 禁文書而酷刑法. 先詐力而後仁義, 以暴虐爲天下始.”(진왕회탐비지심, 행자분지지, 불신공신, 불친사민. 폐왕도, 립사권, 금문서이혹형법. 선사력이후인의, 이포학위천하시)
“탐욕스럽고 비루한 마음을 품었던 진시황은 혼자만 옳다고 여겨 공신들을 믿지 않았고 백성들과도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왕도를 버리고 사사로이 권세를 부려 문서를 금하고 형법을 가혹하게 집행하였다. 속임수와 무력을 앞세우고 인의는 뒷전에 둔 채 포학함을 통치의 시작으로 삼았다.”

진나라 멸망의 원인을 두루 적고 있다. 여기서 탐욕스럽고 비루한 마음이란 불로장생에 집착하여 方士(방사)들을 믿은 진시황의 욕망을 두고 한 말이다. 혼자만 옳다고 여겼다는 말은 獨裁(독재)하며 과로했다는 뜻이다. 문서를 금했다는 것은 사상과 학문을 통제하고 언론을 탄압한 焚書坑儒(분서갱유)를 가리킨다. 형법을 가혹하게 집행했다는 말은 진 제국의 토대가 법가의 重刑主義(중형주의)에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를 싸잡아서 ‘포학한 통치’라 했는데, 노자의 말투로는 ‘極度(극도)의 유위지사’라 표현할 수 있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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