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릴 치(水-5)아닐 불(一-3)있을 재(土-3)성스러울 성(耳-7)

앞서‘문자’의 글(<50>)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바로 “治在道, 不在聖”(치재도, 불재성)이다. 다스림은 도에 있지 성스러움에 있지 않다? 다스림이 도에 있다는 것, 즉 도를 따라야 다스림이 된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다스림이 성스러움에 있지 않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바로 이어서 성인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비록 ‘문자’에 나오는 대목이지만, 이 또한 노자의 의중을 꿰뚫어본 데서 나온 것이다. 성스러움은 무엇인가? 성스러움은 지극히 神靈(신령)하고 至純(지순)하며 어떠한 속됨도 없는 것, 우러러보고 떠받들어야 할 ‘아득히 높은’ 무엇이다.

성스러움은 어떤 대상이든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숭배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것은 집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집착은 固着(고착)이고, 고착은 곧 停滯(정체)다. 정체는 곧 썩음인데, 어찌 이것으로 사람을 살리는 정치, 시세의 변환에 따라 해법을 모색하는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聖人無執故無失”(성인무집고무실) 곧 “성인은 집착하지 않으므로 잃지 않는다”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앞서 2-2에서 노자는 “성인은 민중 앞에 있으나 그 몸을 뒤에 두며, 민중 위에 있으나 그 말을 깍듯하게 한다”(<40>)고 말했다. 성인이 위대한 까닭, 그가 성스러운 까닭은 그가 도달한 경지 곧 성스러움에 머물지 않고 과감하게 그것을 떨쳐냈기 때문이다. 만약 성스러움을 내세우는 이라면 결코 성인이 아니다. 스스로 성스럽다는 의식을 가져도 성인이 아닌데, 하물며 성스러움을 내세우는 이는 말할 것도 없다. 성스럽다는 티가 나지 않는 성인이라야 천하 사람들이 그를 어려워하지 않고 다가가며, 오래도록 싫증 내지 않는다.

성인이 성스러움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참된 군주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 군주라면 누가 보더라도 군주다. 그는 옥좌에 앉아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왜 굳이 권위를 내세우는가? 권위를 내세워야 군주임이 확실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군주다운 군주가 아님을, 군주로서 통치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함을, 스스로 느끼고 있음을 반증할 뿐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