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죽(竹-0)대쪽 간(竹-12) 책 본(木-1)

‘백서본’이 발굴된 때로부터 20년이 지난 뒤인 1993년에 아주 새로운 ‘노자’ 또는 ‘도덕경’이 출토되었다. 湖北省(호북성) 荊門市(형문시) 郭店村(곽점촌)에 있는 이른바 ‘곽점 1호묘’에서 대쪽에 쓰인 ‘노자’가 출토된 것이다. 전국시대 楚(초)나라 때 무덤이고 대쪽에 쓰인 것이어서 ‘楚簡本 老子(초간본 노자)’ 또는 ‘竹簡本 老子(죽간본 노자)’라고 부른다.(이하 ‘죽간본’이라 부른다.) ‘죽간본’은 현재 통용되는 ‘도덕경’보다 글자 수가 훨씬 적은 2046자에 불과하며 내용에서도 현행본 ‘도덕경’ 및 ‘백서본’과 큰 차이가 있다. 더구나 발굴된 대쪽들이 손상된 것이 아니고 그 자체로 완정하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엄청난 파문을 던졌는데, 이는 앞으로 이 글이 진행되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죽간본’은 세 가지가 발굴되어 각각 甲(갑), 乙(을), 丙(병)으로 불린다. 흥미롭게도 이 셋은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 현행본 ‘도덕경’을 기준으로 구분을 지으면, 갑은 20장, 을은 8장, 병은 4장으로 모두 32장이다. 갑과 병에 겹치는 장이 하나 있으므로 이를 빼면 실질적으로는 31장이다. 현행본 81장에 견주면, 확실히 적다.

분량이 적을 뿐 아니라 현행본이나 ‘백서본’에도 나오는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이른바 形而上學的(형이상학적)인 구절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만약 ‘죽간본’이 그 자체로 完整(완정)하다면, 기존의 숱한 해석이나 논쟁이 무색해질 수 있다. 이는 ‘도덕경’의 성립과 해석에서 아주 새로운 관점이나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노자한비열전’에서 사마천은 “세상에서 노자를 배우는 자들은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을 배우는 자들은 노자를 배척한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의 풍조였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줄곧 이어온 관념이었다. 그것은 현행본 ‘도덕경’에 그렇게 판단할 실마리가 적지 않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간본’의 발굴로 본래의 노자 사상에는 이런 배척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오히려 유가의 덕목이나 사상을 수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준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