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닐 불(一-3)이름 명(口-3)한 일(一 -0)돈 전(金-8)
가난은 불명예가 아니고 단지 살아가는 데 불편을 느끼게 할 뿐이다. 옛 사람들이 가난을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강조해도 그 불편을 사서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닥친 가난을 극복하는 사람을 예찬하지만 그 상황에 자신이 직접 부딪치기는 싫다. 더군다나 쉬운 방법으로 흥청망청 풍성하게 돈을 뿌리다가 망하게 되면 세상이 싫다. 동전을 주조할 권한을 갖고 억만금의 호사를 누리다 마지막엔 자신의 이름으로 한 푼의 돈도 없이 굶어 죽었다는 鄧通(등통)의 고사는 가난이라도 청빈과는 거리가 멀다.
漢(한)나라 5대 文帝(문제, 기원전 180~157) 때 사람인 등통은 배를 잘 저어 황제가 타는 배의 선장이 됐다. '史記(사기)'의 佞倖(영행, 佞은 아첨할 녕) 열전에 상세한 이야기가 있다. 영행은 아첨하여 군주의 총애를 받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날 문제가 하늘에 오르는 꿈을 꾸었는데 노란 모자를 쓴 뱃사람이 나타나 뒤를 받쳐주어 쉽게 오를 수 있었다. 문제가 누각에 올라 꿈속 일을 생각하며 뱃사람들을 바라볼 때 한 사람 모습이 아주 닮았다. 바로 등통이란 사람이었다. 등통은 말이나 행동을 조심했고 궁 밖의 사람들과는 사귈 줄도 몰라 문제의 사랑을 받았다.
문제가 한 번은 관상가를 불러 등통을 보게 하니 굶어죽을 상이라 했다. 왕은 등통에 구리광산과 동전을 주조할 권한을 주어 엄청난 부자가 되게 했다. 한번은 문제가 종기를 앓자 등통이 종기를 빨아 주었다. 태자에게 종기를 빨게 하자 마지못해 응했다. 태자는 등통을 미워하게 됐다. 문제가 죽고 태자가 景帝(경제)가 되자 면직된 등통의 비위를 조사했다. 주조한 돈을 나라 밖으로 빼돌린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재산을 몰수했고 등통은 '결국 자기 이름으로는 한 푼의 돈도 갖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집에 얹혀살다가 죽었다(竟不得名一錢 寄死人家/ 경부득명일전 기사인가)'.
나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국회 청문회까지 거부한 최순실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아버지 최태민 목사 때부터 긁어모아 상속된 재산이 빌딩과 강원도의 토지, 또 해외에 숨겨놓은 것까지 수천억대에 이른다고 알려진 바 있다. 거기다 대통령을 업고 재벌들로부터 수백억을 뜯었으니 수완도 좋다. 범죄수익이라도 이미 이전된 재산은 환수를 못 한다는 현행법을 고쳐 여야 의원들이 다투어 몰수법을 발의했다. 지금 국민의 감정은 고사의 등통과 같이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의 이름으로 재산이 일전이라도 없도록 해야 시원하지 않을까.
언론인·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