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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명치시대의 학자 竹添光鴻 (다케조에 신이치로·1842~1917) |
- 백성 민(氏-1) 먹을 식(食)
- 잃을 상(口-9) 제사 제(示-6)
論語(논어)·堯曰(요왈)편에 출전한다. "소중하게 여긴 것은 백성, 먹을 것, 상례와 제사였다. 所重, 民·食·喪·祭(소중, 민·식·상·제)"
이 문장은 尙書(상서)·武成(무성)편에 보이는데, 尙書의 원문은 '백성의 다섯 가지 가르침을 시행하고, 먹을 것과 상례, 제사를 중시하고, 신실함을 도탑게 하고 의를 밝히며, 덕을 숭상하고, 공로에 보응했으니, 옷소매를 드리우고 팔짱을 끼고 있어도 천하가 다스려졌다 重民五敎, 惟食喪祭. 惇信明義, 崇德報功, 垂拱而天下治(중민오교, 유식상제. 돈신명의, 숭덕보공, 수공이천하치)'이다. 垂拱은 垂衣拱手(수의공수)의 약어로 무왕이 시스템을 잘 갖추고, 인재를 적소에 배치해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는 뜻이다. 無爲而治(무위이치)와 같은 의미다.
五敎에 관해서는 정확한 학설이 없다.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자애롭고, 형은 우애 있고, 동생은 공경하며, 자식은 효도하는 다섯 가지의 윤리강령이라고 보는 학자가 있다. 공안국은 '백성은 먹을 것을 천명으로 여긴다. 상례로 가족 간의 사랑을 도탑게 하고, 제사로 효도와 봉양을 숭상함은 모두 성왕이 중하게 여긴 점이었다'는 의미로 풀었다.
이 문장은 표점에 관해 이견이 있다. 주자와 공안국은 民·食·喪·祭을 각각의 일로 나눴다. 일본의 竹添光鴻(다케조에 신이치로·1842~1917)은 論語會箋(논어회전)에서 주자는 民·食·喪·祭를 네 가지 일로 나눠 보았는데, 食은 厚生(후생)의 일이고, 喪祭는 덕을 바르게 하는 일이므로 문장의 의미가 매끄럽지 않다고 보고, 民食을 붙여 백성의 먹을 것과 상례와 제사를 중시했다로 해석한다. 정약용은 民은 사람이므로 食喪祭 세 가지 일과 같은 등급일 수 없다고 하여, 重民, 食·喪·祭로 보고, 백성의 먹을 것, 상례, 제사를 중시했다로 해석했다.
동아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