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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商(상)나라 말기의 三仁(삼인)상. |
하늘 천(大-1) 아래 하(一-2)
갈 지(
丿-3) 백성 민(氏-1)
돌아갈 귀(止-14)마음 심(心)
어찌 언(
灬-7)
論語(논어)·堯曰(요왈)편에 출전한다. "망한 나라를 일으키고, 끊어진 대를 이어주고, 버려진 인재를 등용하니, 천하 백성의 마음이 귀의했다. 興滅國, 繼絶世, 擧逸民, 天下之民歸心焉(흥멸국, 계절세, 거일민, 천하지민귀심언)"
興滅, 繼絶을 주자는 武王(무왕)이 紂王(주왕)을 정벌한 후 요순과 하나라, 商(상)나라의 자손을 봉해준 일을 가리킨다고 보았고, 擧逸民은 갇혔던 箕子(기자)를 풀어주고, 商容(상용)의 지위를 회복해준 것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민심이 바라던 바였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귀의한 것이라고 풀었다.
逸民은 학문이나 덕행은 있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고 세속을 피해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箕子는 黴子(미자), 比干(비간)과 함께 商나라 말기의 三仁(삼인)이라 불렸다. 이름은 胥余(서여)이고, 紂王의 숙부, 또는 庶兄(서형)이었다. 그는 紂王의 폭정이 이어지고 比干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箕子朝鮮(기자조선)설의 기자와 동일인물이다.
商容은 商나라 때 紂王의 樂官(악관)이었는데 충직함 때문에 파면당했다. 武王이 商나라를 정벌한 후 그의 충직함을 표창했다고 한다. 賢人(현인)의 마을을 지날 때 존경의 뜻을 표하는 예인 式閭(식려=式禮·식례)가 그에게서 유래했다. 書經(서경)·武成(무성)편에서는 式商容閭(식용상려)라고 했는데, 式은 軾(식)자와 통하며, 수레 앞에 가로 맨 나무로, 현인의 마을을 지날 때 수레에 서서 몸을 구부려 軾에 기대 예를 표한다는 뜻이고, 閭는 商容의 일족이 살던 마을이다. 武王이 商容의 집 앞을 지날 때 예를 표했던 데서 유래한다.
동아대 철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