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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한 장면. |
조현병을 앓은 친누나, 후지노 마사코의 20여 년간을 찍은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영화 시작에 나오는 자막처럼 조현병의 양상이나 이해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과연 그 말대로 영화는 마사코가 이렇게 된 연유나,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가진 약리학 교수 출신의 부모가 딸의 조현병을 부정하게 된 이유를 밝히는 등의 극적인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신질환자 가족을 위한 시스템의 필요성이나 당시 정신질환자에 대한 처우와 같은 사회적 메시지로 수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철저히 감독 후지노 토모아키의 입장에서 바라본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이상 행동과 함께 점점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는 누나,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을 하는 부모. 그 사이에서 카메라는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집에서 도망쳐 버리기도 하고, 무력하게 누나를 바라만 볼 때도 있다. 참다못해 부모를 비난하기도 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누군가는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가족에게 촬영 허락은 맡은 것인지, 영화를 미리 보여주었는지, 감독 자신도 가족의 일원이면서 왜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지 등 영화 안팎의 윤리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같은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그저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한 여성, 그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마찬가지로 고통받는 그의 부모, 그리고 그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난감함을 고백하는 카메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비겁하기까지 하다. 후반부의 허탈한 전개를 생각해 본다면 더욱 그렇다. 이 모든 일의 원흉처럼 여겨지는 아버지의 생각은 종반부에 이를 때까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카메라도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시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겨우 진행되는 인터뷰도 모든 문제와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다.
작품이 마사코를 담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그저 조현병에 걸리기 전과 후 마사코의 모습만을 제한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편향적이고 협소한 형태로, 있는 그대로의 가족 모습만 바라보겠다는 감독 자신의 의지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런 비겁함이야말로 인간적인 반응 아닌가. 누구에게나 가족은 어느 정도 비윤리적인 존재다. 가족이라는 변명 아래 자행되는 폭력. 번민하고 머뭇거리며 어떨 때는 회피하게 되는, 그러면서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어 분노와 체념이 공존하고 마는 사이. 우리는 이처럼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을 이 작품 속에서 보게 된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답을 구하는 질문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물음과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흔을 고백할 따름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의문문은 비로소 마침표의 문장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