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시크릿 에이전트’의 한 장면. |
엄혹한 군부독재 정권이 통치하던 1977년 브라질, 정체불명의 남자 마르셀로 아우베스(바그네르 모우라)가 노란색 비틀(차)을 타고 고향 헤시피로 들어선다. 신분확인소에서 실종된 어머니의 서류를 찾고 장인에게 맡긴 아들을 찾으러 가긴 하지만 마르셀로가 앞서 왜 고향을 떠났는지,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지 여전히 비밀스럽다. 게다가 마르셀로는 어떤 이유인지 정부의 방해를 받고 심지어 목숨마저 위협받게 된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신작 ‘시크릿 에이전트’(2025)의 제목과 시놉시스를 보고 긴박한 분위기의 첩보물을 기대한 관객은 속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은 첩보물 장르가 지닌 기본 구조, 그러니까 상대 진영이나 특정 인물에 대한 비밀을 밝히는 과정이 아주 느슨할 뿐만 아니라 액션이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시크릿 에이전트’는 다른 방식으로 첩보 장르를 실현한다. 헤시피라는 도시에 남은 기억과 역사에 침입하여 그 비밀을 밝히는 것이다.
관객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중요한 첩보 스릴러 장르인 데다가, 당대 시대상과 도시 괴담 등 브라질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다루고 있음에도 ‘시크릿 에이전트’는 불친절하다. 영화의 맥락에 관한 명확한 설명은커녕 전개도 시간 순서대로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이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은유와 암시로 점철되어 있는 인물과 상황뿐이다.
대신 영화는 신분 기록 등 문서와 신문, 녹음 등 역사를 기록하는 다양한 매체를 동원해 당대 상황을 보존하는 일과 후대가 이를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강조한다. 50여 년이 흐른 뒤 한 대학 연구실로 흘러든 마르셀로의 증언 테이프에 관심을 보이는 대학원생 플라비아(라우라 루페스쿠)가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단순히 연구 자료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남긴 증언과 기록, 그의 운명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결국 기억을 보존하려는 행위와 그 보존된 것을 다시 들여다보려는 관심이야말로 역사를 지탱하는 두 축이라는 점을 작품은 말한다.
‘시크릿 에이전트’의 불친절함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감독은 마치 관객이 영화 그 자체로 자족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는 듯 빈틈과 침묵을 남겨 관객 스스로 그 자리를 메우도록 유도한다. 이 영화에 매료되든, 혹은 당혹감을 느끼든 영화를 보고 나온 순간부터 관객은 1977년의 브라질을 찾아볼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이 영화에서 도시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첩보원은 다름 아닌 관객이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 나선 여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브라질 민중이 겪은 군사 독재의 상흔이다. 영화는 그 아픔을 전시하거나 고발하는 대신 관객이 그 앞에 서게 만든다.
그렇게 ‘시크릿 에이전트’는 장르적 관습 안에서 기억과 기록, 감시와 폭력, 죄책감을 한데 아울러 관객을 움직이게 만든다. 시간은 흐르고, 도시는 말이 없다. 그저 기억만 남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