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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유레카’의 한 장면. |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영화사에 독특한 족적을 남겼던 영화감독 아오야마 신지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만에 그의 걸작 ‘유레카’(2000)가 처음으로 한국에 정식 개봉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 지금, 상영시간이 장장 3시간 37분에 달하는 영화가 개봉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레카’는 아오야마 신지의 기타큐슈 3부작 중 2번째에 해당하는 영화다. 기타큐슈 3부작은 감독이 고향인 기타큐슈에서 찍은 ‘헬프리스’(1996), ‘유레카’, ‘세드 베케이션’(2007) 등 3편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세 작품의 줄거리는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제 의식으로 보면 하나의 연작처럼 맞물린다. 바로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상흔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다.
기타큐슈의 한 지역에서 버스 납치 사건이 일어난다. 총격전 끝에 운전기사 사와이(야쿠쇼 코지), 중학생 나오키(미야자키 마사루)와 여동생 코즈에(미야자키 아오이) 세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이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죄책감과 트라우마, 루머 때문에 고통받는다. 세간의 관심에 고통받던 사와이는 돌연 마을을 떠나고, 나오키 남매의 부모 역시 아이들 곁을 떠나며 남매만 집에 남겨지게 된다.
2년 뒤, 마을로 돌아온 사와이는 나오키 남매의 사정을 전해 듣고 이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여기에 남매의 사촌인 아키히코(사이토 요히치로)도 합류하며 네 사람은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이 무렵, 마을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웃들은 사와이를 의심한다. 다시 한번 상처를 입은 이들은 사와이의 중고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유레카’는 복잡한 줄거리 대신 정적인 연출과 롱테이크, 그리고 ‘지난함’(지극히 어려움)으로 영화를 채운다. 그러니 상영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아니 길어야만 한다. 영화는 커다란 사건으로 시작해 치밀하다 싶을 정도로 서서히, 그리고 세밀하게 절망을 쌓아 올린다. 카메라는 마을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지만, 특정한 사건을 만들어내거나 개입하지 않고 무력하게 등장인물의 반응을 살필 뿐이다.
하지만 영화의 진짜 시작은 이때부터다. 긴 절망을 지나온 세 인물은 다시 한번 그 힘들었던 과정을 반복하면서 서로를 구원하려는 마음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무너진 삶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나오키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사와이의 외침이 이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지금 ‘유레카’일까 아오야마 신지의 기타큐슈 3부작에는 당대 일본의 혼란한 정세가 녹아들어 있다. 버블경제 이후의 혼란함과 대형·사건 사고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 그 속에서 방황하는 21세기 초 일본 사회의 초상을 목도하게 만든다. 영화는 그럼에도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2026년, 세상은 더욱 혼란해지고 여전히 우리는 시대의 급류에 휩쓸리고 있다. ‘유레카’ 속 기나긴 절망의 과정은 동시에 그 끝에는 희망을 쌓아 올릴 수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영화 내내 흑백 세피아톤(바랜 갈색)이었던 화면이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컬러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자막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