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3인조 힙합그룹 리더役
- 20년 만의 재기 위한 분투 그려
- 매일 4시간 춤연습 갈비뼈 다쳐
- 마지막엔 ‘나 좀 잘해’ 자신감도
- 세기 말 1세대 아이돌을 오마주
- 전 세대에 그 시절 감성 닿기를
- ‘세계 최고 배우’ 목표 포기 안해
- 제작자로서도 할리우드 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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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와일드 씽’에서 댄싱머신 현우 역할을 소화한 배우 강동원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동원은 이번 영화를 위해 힙합 음악과 춤을 직접 배우며 1990년대 댄스그룹을 완벽히 재연했다. AA그룹 제공 |
“뭐고, 요새 니 돈이 없드나?”
지난달 21일 영화 ‘와일드 씽’(감독 손재곤)의 홍보 뮤직비디오 ‘트라이앵글 - Love is’가 공개되자마자, 강동원에게 날아든 친한 형의 문자다. 1990년대 말 무대 의상을 입고 헤드스핀을 하는 강동원이라니.
놀란 건 강동원의 지인뿐만이 아니다. 대중 역시 전에 본 적 없는 강동원의 모습에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유튜브에서 279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 중인 해당 뮤직비디오엔 “청룡영화상 축하 무대 꼭 해줬으면 좋겠다” “살다 살다 침대에 누워서 강동원이 3분 넘게 춤추고 노래하는 걸 보고있네” “얼마나 성공하고 싶은지 감도 안 온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배우는 관객이 기대하는 걸 대리만족시켜 주기도 하고, 반대로 배반하기도 하는 존재다. ‘와일드 씽’에서의 강동원은 후자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힙합 전사로 변신한 강동원을 누가 상상했겠나. ‘와일드 씽’은 한 때 가요계를 휩쓸었으나 하루아침에 해체된 3인조 혼성 그룹 ‘트라이앵글’이 20년 만에 재기 기회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미디 영화로, 강동원은 트라이앵글의 리더이자 댄싱머신 현우를 연기했다.
지난 19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강동원은 뮤직비디오 공개 후 쏟아지는 반응에 대해 예견한 듯 “이 영화를 선택할 때 ‘사람들 놀라겠는데?’ 생각했다. 영화 ‘검사외전’(2016)과 ‘초능력자’(2010) 때도 놀라실 거라고 생각하며 선택했었는데, 이번엔 놀라움의 강도가 더 강하겠다 싶었다. 기본적으로 기분 좋은 배신이리라 생각한다. 노력한 게 여실히 드러난 영화다”고 자신했다.
강동원이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첫째도 시나리오, 둘째도 시나리오다. 그의 필모에 유독 신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작품이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인데, 선입견 없이 시나리오로 작품을 판단해 왔기 때문이다. ‘와일드 씽’을 선택한 이유도 시나리오였다. “이야기가 신선했다. 사실 이 대본이 이번에 처음 들어온 게 아니다. 이전에 한 번 들어왔었는데, 그때는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받았는데, 지금이 적기란 생각이 들었다. 트렌드에 부합한 느낌을 받았달까. 그리고 댄스 가수들 이야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지 않나. 할 때가 됐다 싶었다.”
힙합 가수로 변했지만, 평소 힙합에는 문외한이었다는 강동원. ‘투팍(2pac 전설적인명 래퍼)’이 사람 이름인 줄도 몰랐다는 그는 “너무 무지하니까 힙합 역사부터 공부하고, 힙합 다큐멘터리도 챙겨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상에서 힙합 옷을 입고 다녔단다. “개인적으로 메소드 연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번엔 입고 다녀야겠더라. 그렇지 않으면 힙합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걷는지 이해 못 할 것 같았다”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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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와일드 씽’의 한 장면. |
강동원은 정우성과 함께 충무로에서 액션을 가장 잘하는 배우로 꼽힌다. 이는 여러 무술감독이 직접 증언한 사실. 몸을 잘 쓰기로 유명한 강동원이지만, 힙합을 익히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예 베이스가 없는 새로운 운동을 하는 느낌이었다. 힙합은 무용과도 달라서 비트를 맞추는 것부터가 너무 낯설었다”며 “그래서 걸음걸이부터 시작했다. 연습실에 가면 30분 동안 힙합 비트에 맞춰 계속 ‘업~업, 다운~다운’하며 몸을 풀었다. 몸을 푼 다음에 본격적인 안무에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에 4시간씩 매일 땀을 흘렸다”고 설명했다.
‘윈드밀(다리를 벌린 채 어깨와 등을 이용해 회전하는 동작)’을 연습하다 갈비뼈를 다치기도 하고, ‘헤드스핀(머리를 바닥에 댄 물구나무 자세로 몸을 돌리는 동작)’을 대타 없이 직접 해 내려 고군분투했지만, 그렇게 공들인 연습의 결과물은 후반부로 갈수록 빛을 발한다. “무대 경험이 쌓이니까 마지막쯤엔 소위 ‘무대 짬밥’이 생겼다. 처음엔 노래하랴, 춤추랴, 카메라 보랴 정신이 없었는데 익숙해지니까 춤의 디테일이 살기 시작하더라. 마지막 무대는 내가 봐도, ‘나 좀 잘하는구나’ 싶었다. 기회가 되면 마지막 무대의 춤만 따로 풀버전으로 빼서 관객들에게 공개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춤만큼이나 강동원은 현우의 비주얼을 구현하는 데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냈다. “1세대 아이돌들이 활동할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동경하면서 그들의 무대를 봤었기에, 그분들의 스타일을 오마주하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냈다”며 “단순히 희화화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시절의 세기말적 감성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분들이 보셔도 ‘우리가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강동원은 1990년대 감성을 그려낸 이 영화가 전 세대에게 가 닿길 바란다. “세대마다 다르겠지만, 요즘 10, 20대도 옛날 음악을 많이 듣고, 자기들 느낌으로 해석한다고 하더라. 나는 몰라도 H.O.T와 젝스키스를 아는 이가 많다는 것도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알았다. (웃음) 나는 90년대 음악이 우리 시대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세대만 소비하는 게 아니었던 거다. 전 세대가 봐도 좋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관객들도 요즘 한국 옛날 노래를 듣기 시작한다고 하니까, 보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어떻게 보면 황현우는 강동원이 가장 알기 어려운 캐릭터일 수 있다. 황현우와 달리, 강동원은 데뷔 후 줄곧 대중의 시선 한 가운데에 머물러 온 불세출의 스타이기 때문이다. 강동원은 황현우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늘 우상향하긴 했지만, 그 안에서 왔다 갔다 하긴 했다. 우상향했다는 말이 되게 웃긴데, 다행히 200일 이평선(이동평균선)을 벗어난 적은 없는 것 같긴 하다”고 말했다. 이어 “데뷔 초 ‘늑대의 유혹’이 엄청나게 잘 됐을 때부터 ‘언젠가 나도 대중에게 잊힐 것을 염두에 두고 활동해 왔다. 생각보다 인기가 꽤 오래 유지되고 있지만 언젠가 작품이 줄어들고 인간 강동원 자체가 잊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물론 아직 강동원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와일드 씽’에서 현우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건 ‘헤드스핀’. 헤드스핀이 현우의 코어인 셈인데, 문득 배우 강동원의 코어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꺼낸 대답은 “세계 최고의 배우”였다. 단순화해서 대답했지만, 여기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는 진짜로 세계 무대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긴 시간 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할리우드에서 뚜렷한 결과물이 없는 게 사실. 이에 대해 강동원은 “제 마음에 쏙 드는 좋은 대본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가 미국 현지에서는 인지도가 없는 신인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전과 달리진 게 있다면, 배우 외의 제작자 포지션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리우드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 “예전엔 누가 나를 알아봐 주고 써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만들어내고 말겠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상태”다. “좋은 재능을 가진 글로벌 창작자들과 협업할 수 있다면, 굳이 한국 안에서만 머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강동원의 다음 스텝이 궁금하다.
정시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