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났는데 나 홀로 우주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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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한 장면. |
재기 발랄한 SF 소설을 쓰는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당혹스러운 장면으로 시작한다. 라일랜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 안에서 깨어난다. 자신이 왜 우주선에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그레이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레이스는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조금씩 되찾고 끝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그레이스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는 과정과 우주에서 마주한 미지의 존재와 함께 인류 멸망 위기를 돌파하는 과정, 두 이야기를 동력으로 삼아 운행한다.
사실 이같은 우주 조난 사고는 다른 SF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은 대체로 광활하고 아득한 우주에서 혼자 남겨진 인물의 불안이나 공포를 강조한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지배하는 정서는 ‘낙천’과 ‘유머’다. 그레이스는 혼란스럽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포기하지 않으며 그 가운데서도 유머 감각과 웃음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진실을 알게 된 순간조차 그렇다.
이러한 분위기를 완성하는 또 다른 주인공은 외계 생명체 ‘로키’다. 로키는 태양계 너머에서 온 외계 생명체로 그 역시 홀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우연히 그레이스와 만나게 된다. 거미를 닮은 기괴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로키의 천진난만하고 헌신적인 행동은 영화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며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둘은 기술의 도움 없이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녔지만 합동 연구를 진행하며 진심 어린 우정을 나눈다. 영화는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편견을 걷어내고 대화하며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는 그 마음. 그것은 정작 같은 언어를 쓰는 지구에서 그레이스가 경험한 소통의 단절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작품 속 우주를 멸망시키는 존재로 등장하는 ‘아스트로파지’가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일종의 세포에 가까운 형태로 그려지는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이 ‘비접촉’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둘은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진화해 왔기 때문에 같은 공기 안에서 생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로키는 그레이스와 만날 때마다 유리 보호막을 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E.T’(1982)가 지구라는 같은 환경 속에서 인간과 외계 존재가 직접 접촉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영화라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접촉하지 않고도 우정이 성립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접촉할 수 없는 관계는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선을 긋게 만든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아무리 가까워진다고 해도 둘 사이의 투명한 유리 보호막은 결코 넘을 수 없는 경계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물리적 거리 덕분에 둘의 관계에는 순수한 애정만 남는다. 노먼 매클레인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구절처럼 그들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영화 후반부 그레이스와 로키가 내리는 선택은 그래서 더욱 귀중한 의미를 갖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결국 닿을 수 없을지라도 서로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희망과 낙천의 영화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