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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의 인서트] ‘휴민트’ ‘왕사남’ ‘넘버원’…위기의 극장가 구원투수

설 연휴 한국 영화 3파전

  • 김민우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6-02-18 19:09:13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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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극장가가 한국 상업 영화로 북적인다. 이번 설 연휴에는 3편의 신작이 나란히 스크린에 걸렸다.
영화 ‘휴민트’(왼쪽)와 ‘왕과 사는 남자’의 한 장면.
류승완의 ‘휴민트’, 장항준의 ‘왕과 사는 남자’, 김태용의 ‘넘버원’ 등 각기 다른 경력을 가진 감독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들고 왔으니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에서 꽤 고무적이다.

먼저 언급할 영화는 ‘휴민트’다. 동남아 일대에서 북한 정부의 국제 범죄를 추적하던 조 과장(조인성)이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채선화(신세경)를 휴민트(정보원)로 포섭하게 되고, 과거 선화와 관계가 있는 보위부 박건(박정민)이 사건에 휘말린다는 전형적인 첩보 누아르의 공식을 따르는 영화다. 다른 요소를 배제하고 오직 오락적인 재미로 충실한 ‘휴민트’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 박정민이다. 삼엄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그의 연기와 얼굴은 로맨스를 만들어주는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호쾌한 근접 액션 역시 여전한데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권총 액션이 주목할 만하다. 영화에서 권총은 창의적인 액션 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광활하고 복잡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장면에서는 조준이 어렵다는 특성과 맞물려 관객에게 특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정리하자면 류승완 감독의 오랜 별명인 ‘충무로 액션 키드’에 걸맞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연출작인 ‘왕과 사는 남자’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단종(박지훈)의 유배 생활을 다룬다. 그 끝이 정해진 역사의 결말을 따라가기에 작품은 사건보다는 사람 간의 관계에 집중한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 유배지를 자청하는 광천골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시선으로 다소 코믹하게 시작해 묵직한 역사의 격랑까지 나아간다. 특히 강조되는 것은 신분을 넘어 이루어지는 우정이다.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는 단순히 왕에 대한 충절의 감정뿐만 아니라 서로의 진심 어린 마음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사이로 그려지며, 그렇기에 결말의 비극이 더 강조된다. 장항준 감독은 관객들에게 친숙한 캐릭터와 ‘기-승-전-결’의 정석적인 연출로 관객의 공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넘버원’은 독특한 소재와 함께 요즘 보기 드문 한국형 신파 영화를 의도하고 있다. 어느 날부터 눈앞에 의문의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주인공 하민(최우식)은 엄마 은실(장혜진)의 밥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조금씩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깨닫게 된 하민이 비극적인 운명을 피하고자 펼치는 고군분투를 다룬다.

비록 신파극 특유의 작위적인 부분이 있지만 늘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하민과 그 때문에 상처받는 은실의 관계가 돋보인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집밥’을 죽음과 연결한 독특한 설정이 흥미롭다. 또 영화의 중요 배경이 부산이기 때문에 다양한 장면 속에 등장하는 촬영지를 알아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한국 영화 산업의 어려움 속에서 제작된 이 3편의 영화를 보며 영화계의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체감된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세 작품 모두 도전보다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고뇌와 씁쓸함이 함께 느껴진다. 아직 희망을 말하기에는 섣부르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영화를 이어 나가려는 그들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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