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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동시대성의 실종, 현재의 지평을 잃은 한국영화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12-27 19:27:20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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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2023)의 장르적 만듦새와 연출 의도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12·12 군사반란을 다룬 데 이어 신군부의 언론 통제에 관한 영화 제작이 준비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려가 들었다. 제작사 대표는 ‘앞으로도 근현대사에 관심을 꾸준히 갖고 좋은 소재를 발굴해 관객과 만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러기엔 우리는 충분하다 못해 과포화이다 싶을 만큼 군사독재와 민주화 운동 시절을 다룬 영화를 여러 차례 보아오지 않았던가?

‘변호인’(2013) ‘택시 운전사’(2017) ‘1987’(2017),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사건을 각색한 ‘헌트’(2022)까지 이 흐름의 연속성은 도돌이표와도 같다.

역사라기엔 가깝지만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는 근현대사에 대한 되새김질의 영화들. 현대의 재원을 가지고 시대를 복기하는 일련의 경향은 대중영화에 필요한 선악의 대립구도, 장르적 시공간으로 기능하기 적합한 시대상을 찾는다는 이유 이상의 무언가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밀수’(2023)도 이런 노스탤지어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의 작가와 관객, 양자 모두의 시야는 현재 지평을 떠나 과거 한 시점에 고정되어 버린 것 아닐까? 인구 구조 특성상 한국 영화에서 1000만 관객 동원은 중장년층 연령대의 호응 없이는 어렵다는 점을 떠올리자면 이 징후는 실로 의미심장해진다.

‘노량: 죽음의 바다’(2023)는 더욱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량’(2014)과 마찬가지로 어트랙션으로서 스펙터클을 합리화시켜 주는 구실은 국난을 짊어진 성웅의 활약에 따르기 마련인 과잉된 민족주의적 정념이다. 오로지 그것만이 해전의 재현에만 러닝타임의 3분의 2인 100분을 쏟아붓느라 서사의 균형이 무너져버린 극의 앙상한 구조를 간신히 뒷받침해 준다. 프로덕션 규모를 갱신하며 장대한 액션을 펼쳐 보이겠다는 과시적 욕망 외에는 텅 비어있는 이 영화에서도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시사하는 현재적 의미는 딱히 엿보이지 않는다.

‘범죄도시3‘(2023)로 돌아가 보자. 배경은 현재에 가까운 2015년이라지만 이 영화에서도 시간성은 완전히 증발돼 있다. 범죄는 마석도 형사의 활약을 위한 일차원적인 구실로만 나타날 뿐, 정작 범죄를 유발한 원인·배경이라는 맥락의 세부를 제시하지 않기에 뇌리에는 액션 활극의 단편적인 쾌감과 인상만 남고, 현대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동시대성에 대한 질문은 봉합되고 만다. 도리어 배경은 1980년대일지언정 과거를 복기하며 현재와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캐묻게 했던 ‘살인의 추억’(2003)이야말로 동시대적 문제의식이 충만했다.

영화는 과거를 향해 가고, 작가와 관객층 모두 늙어가며, 그 안에서 현실의 그림자는 유령처럼 형해(形骸)화되고 실종되어만 간다. 과거를 장르화하거나 지옥을 오락화하는 것 말고는 서사의 동력을 얻지 못하고, 갈수록 지금 이곳의 실패를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영화가 처한 근본적인 위기 아닐까? 한국영화가 살아난다고 떠들지만 일시적인 증상 완화에 지나지 않는다. 점차 어느 누구도 동시대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게 되어가고, 낭만화된 과거나 장르의 공간으로 도피하며 현재의 파국을 외면하는 이 비겁합이 대체 ‘퇴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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