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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불의가 정의로 둔갑한 시대…그 부당한 역사에 맞선 의인 이야기

‘서울의 봄’(2023)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11-29 19:31:48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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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민·정우성 정교한 연기 호흡
- 하나회 단체 사진과 포개진 군가
- 그들에게 전우애란 권력 사인화

‘도척(盜跖)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 고기를 회로 쳐 먹으며, 포악한 짓을 멋대로 저지르고 수천 명의 패거리를 모아 천하를 휘젓고 다녔지만, 결국에는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중략) 줄곧 근면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앙과 화를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는 의심스럽다. 정녕 하늘의 도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 ’사기’(史記) ’백이숙제열전‘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장면들. 빛을 활용한 세심한 연출 또한 눈여겨볼 요소다. 공식 홈페이지 제공
전두광(황정민)이 혼자 바둑을 두다 집에 찾아온 노태건(박해준)과 모의하는 장면은 ‘서울의 봄’(2023)의 핵심을 단번에 관통한다. 흰 돌과 검은 돌의 대치는 정의와 불의의 대립을, 한 수 한 수 놓기에 따라 전황의 우세와 열세가 수시로 변하며 언제든지 판이 뒤집힐 수 있는 바둑판은 숨 쉴 틈 없이 밀어닥치는 긴박한 수 싸움의 긴장을, 그리고 집어든 바둑돌 하나를 뉴스 방영 중인 텔레비전 화면에 집어던지는 전두광의 행동은 곧 정부를 때리는 행위, 쿠데타를 암시한다.

바둑돌의 흑(黑)과 백(白)은 영화의 시각적 연출방식까지도 함축한다. 12.12 군사반란의 주도자인 전두광은 그림자에, 예하부대만으로 진압을 시도한 이태신(정우성)은 빛에 휩싸여 등장하며, 명암 콘트라스트를 강조하는 영상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양자 간의 구도를 조용히 웅변하고, 치밀한 계산 하에 호흡을 잡고 전달하고 뺏는 정교한 연기 앙상블은 인물 간의 우열관계와 성격차이를 극명히 드러낸다. 김성수 감독은 참모총장 납치와 정권 탈취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면서, 보다 근본적인 지점에서 굳은 심지와 정의감을 가진 청류(淸流)의 인물이 어떻게 탁류(濁流)에 맞서 패배했는가를 다루고자 한다.

음모를 꾸미는 책모가로서 자기 사당(私黨)을 거느린 전두광은, 정의롭지만 홀로 고립되는 이태신과 대조를 이룬다, 그는 마치 ‘훔치러 들어갈 때 재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는 것을 성(聖),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을 용(勇), 뒤에 나오는 것을 의(義)라 하며, 털지 말지 판단하는 것을 지(知), 훔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인(仁)’(‘장자’(莊子) ‘거협편’)이라던 격언을 온몸으로 구현한 인물처럼 보인다. 대개의 인간이란 동기에 사리사욕이 따라야만 움직이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도덕과 명분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실리를 제시하는 편으로 흘려들기 마련이다. 성공한 권력자란 바로 이 점을 간파하고 이용한 이들이다. ‘서울의 봄’이 복잡한 감상을 남겨주는 건 상식과 이치대로 되지 않는 역사와 현실의 회색지대, 인간의 저열한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시선의 깊이가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막을 내림과 함께 들려오는 군가 ‘전선을 간다’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 느낌을 한 번에 전달한다. 전우를 호명하는 가사는 하나회의 단체사진과 포개지면서 저들의 끈끈한 전우애란 결국 권력의 사인화(私人化)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냉소를, 괴로움에 신음하듯 짓눌린 분위기의 곡조는 시대에 대한 슬픔과 애도의 정념을 담아낸다.

‘서울의 봄’은 비록 꺾이고 말았을지언정, 한번쯤은 불의에 대적해보았던 역사와 의인을 그려내 보이고 싶었던 의기(義氣)의 산물이다. 그리고 제각기 다른 편에 서서 혼란의 와중에 행동을 달리하며 성패의 향방을 가른 집단의 세부를 굉장한 영화적 활력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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