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계급사회 속 비틀리고 고립된 개인…일상이 호러가 된 세상

‘뉴 노멀’(2023)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3-11-08 18:40:09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정범식 감독의 필모그래피에는 은밀한 연속성이 있다. ‘기담’(2007)이 낡은 앨범을 꺼내 펼치듯 유신 시대 시점에서 일제강점기를 돌아보는 회고의 옴니버스 호러였다면, ‘곤지암’(2018)에서는 청년들이 유신 시대 이후 버려진 정신병원의 폐허로 탐색해 들어가며 귀신을 만나는 상황을 파운드 푸티지 형식으로 그린 바 있다.
‘뉴 노멀’ 스틸 컷.
안생병원과 곤지암 정신병원은 다들 정신적 병리(病理)와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감독이 보기에 한국 근현대사란 뒤틀리고 일그러진 기형(奇形)의 시대이며, 죽음과 공포의 기운으로 얼룩져 살아냈던 모든 이를 병들게 한 어둠의 근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뉴 노멀’(2023)에 이르러 감독의 관심은 마침내 오늘날 한국사회로 귀착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점진적으로 후대의 시간대를 향해 이동하는 이 필모그래피의 발전선상은 달리 말하자면 카메라로 서술하는 일종의 연대기라 할 만하다. 시대의 암울한 풍경과 그 안에서 분열되고 무너지는 개인들의 정신병리적 현상에 초점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세 영화는 일관된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독해해 봄 직하다. 허공에 눈이 흩날리는 가운데 서울 시가지 풍광을 포착하는 항공촬영 숏과 그에 포개지는 아나운서의 뉴스 오프닝은 영화가 지금의 사회상을 조망해 보려는 의도의 산물임을 선언한다. 처음에는 관련 없어 보이던 분자적 개인들의 이야기는 어느 시점에서 교차점을 갖고 동일한 세계의 다른 층위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의미를 갖게 된다.

무언가 확인하려 선을 넘는 순간, 자신의 환상이나 욕망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실체, 죽음을 만난다는 호러의 규칙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표면과 실체의 괴리, 분열된 정체성의 테마는 에피소드마다 변주를 거듭한다. ‘M’의 우아한 중산층 독신 여성, ‘옳은 일을 해라’에서 학생의 호의에 고마워하는 할머니의 실상은 외양과는 전혀 다른 범죄자이며, ‘개 같은 내 인생’의 편의점 직원은 온라인 게임의 음성채팅 상에선 잘나가는 직장인 남성 행세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피핑톰’에서 옆집 스튜어디스를 엿보는 청년은 망상의 실현을 위해 가택침입을 하다가, ‘개 같은 내 인생’의 편의점 점원은 호기심에 인터넷 댓글에서 예고된 범죄를 확인하려다 봉변을 당하고, ‘드레스드 투 킬’과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연애상대를 찾는 두 남녀는 멜로드라마적 환상을 추적하던 끝에 참극을 마주한다.

배우 이름과 함께 등장인물을 번갈아 보여주는 클로징 타이틀은 영화의 의미를 완결 짓는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여섯 명의 식사하는 모습은 그들이 처한 사회적 위상과 계급성의 차이를 드러내며 한 편의 스릴러 안에 우리 시대 총체적 풍경을 담고자 한 작가적 의도를 드러낸다.

‘뉴 노멀’에는 귀신같은 초자연적 존재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계급으로 찢기고 나뉘어 어떠한 소통의 가능성도 남지 않은 채, 고립되어 비틀려 버린 개인이 괴물이 된 사회에서, 사람이 곧 귀신이고 우리의 일상 자체가 호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감독의 눈에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이전 근현대사의 특정 시기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기이(奇異)한 시대로 비쳤을 법하다. 어쩌면 우리는 ‘뉴 노멀’을 두고 ‘기담’과 ‘곤지암’을 잇는 ‘기담(奇談) 3부작’ 완결편이라 명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2. 2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3. 3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4. 4해운대 벗어나 우리동네로…부산이 온통 극장이네요
  5. 5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6. 6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7. 7[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8. 8‘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9. 9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10. 10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1. 1‘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2. 2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3. 3李 “김지용, 친윤 아닌 반윤 검사” 중수청장 청문 요청키로
  4. 4국힘, 중수청 앞서 “범죄자 천국될 것” 여론전(종합)
  5. 5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6. 6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7. 7국정원 “우크라가 北포로 송환 비공개 먼저 요청”(종합)
  8. 8‘김종서함’ 울산 진수식 찾은 이재명 대통령 “자주국방이 주권”
  9. 9靑 정책실장에 하준경 수석, 지방시대위원장에 박정현
  10. 10이 대통령 "전작권 환수로 자주국방 마침표"
  1. 1“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2. 2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3. 3신한銀 2만5000명 고객정보 털렸다…당국 조사
  4. 4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5. 5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6. 6리사이클링·항만운영·담수화…부산 미래산업 이끌 혁신기술
  7. 7주가지수- 2026년 10월 1일
  8. 8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우수학술 부문
  9. 9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연구혁신 부문
  10. 10BPA, 5번째 해외 물류거점 구축…베트남 사업 본궤도
  1. 1“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2. 2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3. 3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4. 4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5. 5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6. 6‘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7. 7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8. 8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9. 9“기관장 인선, 유능하면 지역 불문…산은 유치 채널 총동원”
  10. 10검찰 기존 사건 90일 간 수사 가능…대규모 사건이관에 현장혼선 우려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3. 3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4. 4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5. 5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6. 6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7. 7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8. 8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속사권총 우승…한국 25번째 金
  9. 9윤규성, 태권도 품새 금메달…한국 남자 개인전 3연패
  10. 10독립운동가 후손 재일교포 허미미, AG 여자 유도 57㎏급 금메달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부산 야구장 미래는
사직 역사성 있지만 대체구장 부담…북항 돔은 재원 관건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