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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괴물화’…재난보다 무서운 이병헌의 연기력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서 재난 속 주민대표 역 열연

  •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
  •  |   입력 : 2023-08-09 19:33:0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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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야말로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1991년 데뷔 이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에 있어서는 한 번도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던 배우니까 말이다. 그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개봉 9일)로 관객과 만난다. 이병헌이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등과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유일하게 황궁아파트 한 동이 남게 되고, 아파트 주민이 생존자들과 거리를 두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대지진에서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의 주민 대표를 맡게 된 영탁 역의 이병헌. BH엔터테인먼트 제공
- 권력자 된 어눌한 보통사람
- 감정의 극단 표현하려 애써
- M자형 탈모로 캐릭터 완성
- 어쩐지 팬은 줄어들 것 같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세상이 지진 때문에 모두 무너졌는데 우리 아파트만 살아남았다는 간단한 이야기만 듣고, 거기서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며 “설정 자체에서 만화적이면서도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과 갈등이 현실적으로 그려진 점이 좋았다”고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대지진에 폐허가 된 서울을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영탁은 온몸으로 1층에 난 불을 껐다는 이유로 아파트 대표 완장을 차게 되는 인물이다. 지진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그는 아파트 바깥 생존자들과의 대치 속에서 점점 영향력을 넓혀가며 권력의 맛에 빠지고, 주변 인물까지 변화시킨다. 이병헌은 영탁의 변화를 디테일하고 치밀한 감정선으로 표현했다.

그는 “영탁을 전형적인 소시민이라고 보고 접근했다. 내 집 하나 마련하려고 발버둥 치던 사람이 신분이 상승하면서 맛보게 되는 권력욕과 그런 상황에서 ‘이게 뭐지?’라고 느끼는 감정을 생생하게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연기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는 영탁이라는 극단의 감정을 지닌 인물을 완벽히 소화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는 “배우로서 극단적인 감정을 연기로 보여주기까지 ‘내 감정을 이해하고, 인물의 정서에 같이 들어올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있다. 다행히 시사 이후 많은 분이 ‘굉장히 좋았다’고 얘기해 주셔서 기분이 좋다”며 안도했다.

이병헌은 영탁을 표현하기 위해 스스로 M자형 탈모가 있는 폭탄머리를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재난 상황이니 당연히 이발은 못 했을 것이고, 웃겨 보여도 기괴한 느낌을 주는 헤어스타일이 맞는다고 봤다. 약간 터치해서 M자 탈모가 있는 모습으로 해보자며 계속 아이디어를 내고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는데, 왠지 팬은 많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영화를 보면 ‘이병헌은 머리카락도 연기를 한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머리가 빳빳하게 서기 때문이다. 그는 “분장팀, 엄태화 감독님과 의논해 머리카락이 갈수록 살짝 서게 만들었다. 잘 보면 머리카락 각도가 나중에 달라져 있다. 그래서 진짜 카리스마 있게 느껴지는데, 권력이 생겼을 때의 머리는 마치 고양이가 등의 털을 세운 것처럼 나온다”고 섬세하게 변화를 준 헤어스타일을 설명했다.

이 밖에도 영화 초반 아파트 주민 명부에 이름을 적는 장면이나 외부인을 쫓아내기 위해 영탁이 나섰다가 몽둥이로 맞는 장면에서도 자세히 보면 이병헌의 디테일한 어떤(?) 연기를 찾을 수 있다.

이병헌은 후배들이 함께 연기하길 바라는 ‘배우들의 배우’이기도 하다. 황궁 아파트의 신혼부부로 출연한 박서준·박보영은 이병헌과 함께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박서준은 이병헌이 출연한다고 해서 먼저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자신에게 믿음을 가진 후배들에 대해 이병헌은 “박서준은 진짜 건실하고 건강한 청년이다. 연기할 때는 미묘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캐릭터 변화를 나름 계산해서 하는 걸 보면 배우로서 예민함과 섬세함이 그 안에 있구나 싶더라”며 칭찬했다.

영화에서 희망 메시지를 전하는 박보영에 대해서는 “예쁘고 귀여운 모습만 생각했는데 저와 대립하는 장면에서 붙게 됐다. (박보영이) ‘선배님 되게 무섭잖아요’라고 하는데 ‘나는 네가 더 무서웠어’라고 했다”며 강렬한 연기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을 높이 샀다.

이제 이병헌은 ‘오징어 게임’ 시즌2를 촬영한다. 그는 “(‘오징어 게임’) 촬영이 끝난 후 황동혁 감독님과 저녁을 먹으면서 ‘시리즈 해보니 어떠시냐’고 물었는데, 그땐 ‘절대 다시는 TV 안 할 것’이라고 단언하셨다. 치아가 몇 개 빠지고 너무 많이 고생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반응이 이렇게 커지니 힘들었음에도 시즌2를 하기로 하시더라. 시즌2 대본을 읽고 ‘이 사람(황동혁)은 정말 이야기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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