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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너머 북청색 바다…슬램덩크 속 그 곳 빼다박았네

부산 청사포서 즐기는 하루

  •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  |   입력 : 2023-03-08 19:00:47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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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무너질 듯 푸른 하늘과 바다가 고요히 흐르고, 널어놓은 미역이 짭쪼롬한 바다 냄새를 풍기는 부산의 조용한 어촌마을. 아파트 숲 도심에서 빠져나와 한 고개만 넘으면, 가파른 내리막길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푸른 항구마을 ‘청사포(靑沙浦)’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차분해진다. 무심한 바다 물결에 소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름다운 풍광에 시간도 느리게 흘러가는 이곳 ‘청사포’가 요즘은 다른 이유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엉뚱하게도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성지라는 별명이 붙었단다.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또 미처 몰랐던 숨은 명소를 찾기 위해 한동안 뜸했던 청사포로 가봤다.
부산의 조용한 어촌마을 청사포가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배경과 비슷한 풍광으로 ‘인생샷’ 명소로 떠올랐다. 이원준 기자
- 영화 ‘슬램덩크’ 흥행 1위로 신드롬
- 배경지 日 ‘가마쿠라’ 감성 빼닮아
- 팬들 몰리며 철길 등 인증샷 성지로
- 열차 뜨면 놓칠세라 곳곳 ‘찰칵찰칵’

- ‘카페 디아트’ 디저트 카이막 맛보고
- 감성갤러리 ‘북청화첩’도 들러볼 만

■ 日 슬램덩크 성지 빼다박은 청사포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타고 다니던 열차 에노덴 인증샷들. 인스타그램 캡처
8일 오후 청사포 해변열차 건널목에 ‘땡땡땡’ 종소리가 울리고 진입차단기가 내려오자 주변에 서 있던 10여 명이 일제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내 빠른 속도로 통과하는 열차를 놓칠세라 더 빠른 속도로 ‘찰칵 찰칵’ 셔터 누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빨간 열차와 그 너머 푸른 수평선, 맑은 하늘까지 아무렇게나 찍어도 SNS에서 보던 바로 그 장면이다.

청사포 해변열차 풍광이야 예전부터 유명했지만, 최근 SNS에서 인생샷 명소로 다시 급부상 한 건 26년 만에 애니메이션으로 귀환한 ‘슬램덩크’ 때문이다. 청사포가 슬램덩크의 배경이 된 일본 가나가와현의 갯마을 ‘가마쿠라(鎌倉)’를 닮았다는 게 이유. 열차 너머 먼 바다까지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청사포 건널목은 가마쿠라의 인증샷 명소인 철도 건널목을 빼다박아 ‘슬램덩크 성지’ ‘제2의 가마쿠라’가 됐다.

지난 1월 국내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 7일 기준 누적 관객 수 387만 명을 기록하며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1위 ‘너의 이름은’(380만)을 가뿐히 넘어섰다. 1990년대 인기 만화 ‘슬램덩크’를 스크린으로 옮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완성도 높은 작화와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30·40대뿐만 아니라 Z세대까지 극장으로 불러들이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 카이막 한입이면 여기가 튀르키예

카페 ‘디아트’는 튀르키예 디저트 카이막 맛집으로 입소문 났다.
추억의 애니메이션으로 감성을 채웠다면 다음은 이국적인 맛으로 입을 즐겁게 할 차례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천상의 맛’이라고 극찬한 튀르키예 디저트 카이막(kaymak) 맛집이 청사포에 있다. 수많은 가게가 새롭게 들어왔다가 떠나는 중에도 10년 넘게 청사포를 지킨 카페 ‘디아트(DIART)’를 찾았다. 디아트는 카이막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카이막은 신선한 우유를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끓여 만든 크림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는 직접 구운 화이트바게트와 카이막, 천연 꿀이 함께 세트(9500원)로 나왔다. 먼저 카이막을 맛봤다. 하얀 크림은 입 안에 넣자 아이스크림처럼 금세 녹았는데 진한 우유의 풍미가 감돌아 인상적이었다. 우유 특유의 비릿한 뒷맛도 없었다. 부드럽고 쫄깃한 바게트 위에 카이막과 천연 꿀을 듬뿍 올려 먹어봤다. 고소한 바게트에 우유의 풍미와 달달한 꿀이 어우러지면서 맛과 식감 모두를 만족시켰다.

디아트가 카이막을 메뉴에 올린 건 방송에서 조명되기 전인 2021년부터다. ‘최고의 레시피는 없다. 최선의 레시피만 있을 뿐’이라는 강경호 대표는 지금까지도 매일 카이막을 맛보고 수정·보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디저트에 도전하면서 성장해간다고 여긴다. 카이막은 그 과정의 하나였다. 이제 나만의 카이막이 완성형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며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강 대표는 음식이란 어우러졌을 때 돋보이는 것이며, 카이막은 그런 점에서 매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카이막 맛집으로 이름났지만 이전엔 ‘커피 맛집’으로 더 유명했다. 2005년부터 2011년까지 광복동에 있다가 이듬해 청사포로 옮겨왔다. 이곳에선 후지로얄 직화식 배전기를 쓰는데, 커피에 바로 열이 전달되는 로스팅으로 맛과 향을 충분히 살린다. 온도 시간 공기 모두 일일이 직접 설정하는 기계라 다루기는 까다롭지만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맛의 범위가 넓고, 조금 더 온기가 느껴지는 커피를 만들 수 있어 사용하고 있다. 11년 전 청사포를 보자마자 카페를 열었다는 강 대표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여전히 질리지 않고 재밌다”고 말한다.

■ 북청색 청사포 바다를 담은 갤러리

짙고 푸른 청사포 바다를 품은 갤러리 북청화첩의 외관과 내부 전시장 모습.
청사포 철길마을에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과거 작가들이 들어와 살던 예술공간이었다.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에 2021년 6월 작은 갤러리 카페가 들어섰다. 이름은 북청화첩(北靑畵帖). 짙고 푸른 ‘북청(北靑)’색 청사포 바다에 그림을 모아놓은 ‘화첩’ 공간이라 하여 북청화첩으로 이름 지었다. 청사포 해변열차 정거장에서 미포 방향 건널목 바로 앞에 있는데, 네모난 안경 쓴 강아지 벽화를 찾으면 바로 그곳이다.

북청화첩은 목적 없이 마을을 걷다가 ‘이서연 초대전’이라는 전시 현수막만 보고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SNS 홍보도, 초청장도 보내지 않기 때문에 방문객 대부분이 이처럼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전시장(화이트 큐브)과 카페 공간이 분리돼 있고, 따뜻한 우드톤에 녹색 화분과 화사한 꽃병이 생기를 더했다. 무엇보다 바다 방향으로 크게 난 창문이 탁 트인 하늘과 바다, 그리고 철길마을과 해변열차를 담아내 가장 멋진 액자로 걸려 있었다.

다른 벽에는 도시 실루엣을 철판으로 작업한 우징 작가의 작품이 공간에 긴장감을 더했다. 갤러리 인테리어를 우징 작가가 맡았다고 한다. 작가는 “해외 도시 풍경과 마을 풍경을 섞어 한 동네처럼 작업했다. 주민들도 익숙한 마을 풍경을 보면 좀 더 작품에 애정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북청화첩은 대관비를 받고 공간을 내어주는 동네 갤러리카페일 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소규모이지만 초대전만 열고 있었다. 3주마다 새 전시를 선보이는데, 초대작가는 미술교사 출신인 양재련 고문이 지역 작가와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선정한다. 지금은 이서연 개인전 ‘Fragility of Life’가 열리고 있다.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삶이지만, 그 속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는 회화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북청화첩은 전시, 식음뿐만 아니라 교육과 체험도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된다. 1000원으로 미술 도구를 빌려 그림 그릴 수도 있고,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지금은 죽음에 관한 책과 정체성에 관한 책 각각 4권씩 묶어 제안한다. 매주 수요일에는 우징 작가의 드로잉 수업도 열린다. 양 고문이 ‘집단 경영’이라 얘기할 정도로 여러 사람의 애정이 모여 운영되고 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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