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이면서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곳 가운데 도서관도 있다. 시민의 생활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매력 높고 특별한 도서관을 탐방하는‘그 도서관 가보셨어요’를 부정기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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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1층 해양도서관에서 김태만(왼쪽) 관장이 손증호 부산시조시인협회장과 마주앉아 이 도서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현재 휴관 중인 해양도서관은 다음달 16일 재개관한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
- 5만2000권 중 25%가 해양서적
- 부산의 자존심 같은 전문 도서관
- 헤밍웨이 ‘노인과바다’ 발표잡지
- 1831년 펴낸 ‘로빈슨 크루소’ 등
- 다양한 희귀·유일본 즐길 수 있어
이 취재는 부산의 예술·문화인 몇 분이 들려준 ‘제보’에서 시작했다. “그 도서관에 가면 열람실에서 바다가 보여.” 바다라고? 도서관에서? 또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 부부는 낮으로 시간 날 때 그 도서관에 함께 가곤 했지. 바다 경치가 보이는, 편한 소파에 앉아 책을 보다가 졸리면 나와서 국립해양박물관 친수공간에서 산책하고 전시관도 둘러보고.” 그가 덧붙였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땐, 박물관 자체가 문을 닫거나 입장을 제한했으니까 자연스럽게 발길이 뜸해지긴 했지만….”
코로나19의 기세가 꺾인 지금, 문득 ‘그 도서관’이 생각났다. 오랜 세월 부산 영도구에 살면서 교직 생활도 영도에 있는 해동중학교에서만 거의 했던 손증호 부산시조시인협회장을 얼마 전 만났을 때 물어봤다. “영도 동삼동 국립해양박물관에 가면 ‘오션 뷰’ 도서관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아십니까?” 손 시조시인이 답했다. “국립해양박물관에는 꽤 갔죠. 해양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동네에 오래 살았거든요. 그런데 거기 도서관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는 언어를 탁월하게 조탁하는 시조시인이며 공부를 좋아하고 책도 많이 읽는다. 손 시조시인은 국제신문·부산시·부산길걷기시민모임이 2009년 부산의 해안길 명칭을 공모했을 때, ‘갈맷길’이라는 이름을 응모해 당선의 영예를 안은 주인공이다. 영도에 있는 ‘오션 뷰’ 도서관에 함께 취재하러 가기에 딱 좋은 분이다. 손 시조시인에게 부탁했다. “그러면 함께 가보시겠습니까?” 대답이 흔쾌했다. “그럼요! 우리 집이 영도 봉래동이니까 버스 타면 금방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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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해양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귀중한 고서. |
■다음달 16일 재개관
미리 연락해 취재 약속을 잡은 뒤, 지난 16일 손 시조시인과 함께 해양도서관에 들어섰다. 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장과 관련 부서 담당자들이 환대해주었다. 김수형 학술연구팀 사서가 현황을 설명했다. “우리 국립해양박물관 해양도서관에는 약 5만2000권의 장서 가운데 해양 관련 책이 약 1만2000권 있습니다. 개관 당시 해양 관련 책의 비중이 10%대였는데, 지금은 25%까지 끌어올렸습니다. 해양 전문 도서관이기에 해양 관련 서적의 비율을 더욱 높이 끌어올리고 중요한 자료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할 과제가 저희에게는 있습니다.”
이 도서관은 해양도시 부산의 자존심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양도시 부산에 어떤 해양 상징이 있는가’ 하고 누가 물을 때, “잘 가꾼, 앞으로는 더 좋아질 공공 해양도서관도 있다”고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수형 사서가 설명을 이어갔다. “매주 화~토요일(일·월요일, 공휴일 휴관) 오전 10부터 오후 5시까지 도서관 문을 엽니다. 다만, 국립해양박물관 새 단장 작업 등과 관련해 도서관은 현재는 휴관 중입니다.” 애초 박물관 측은 “오는 28일 재개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2일 오후 “사정상 오는 3월 16일로 재개관일이 늦춰졌다”고 급히 알려왔다.
바다가 보였다. 해양도서관이 1층에 있어, 탁 트인 오션 뷰까지는 아니었지만 아치섬 자체를 통째로 캠퍼스로 쓰는 한국해양대와 친수공간 그리고 영도 바다가 정겹고 예쁜 풍경을 드러냈다. 파도가 거센 날 이 도서관 창가에 앉아 책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안락한 의자를 배치해 책 읽는 시민이 풍경까지 함께 즐길 수 있게 한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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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도서관의 희귀본. |
■바다를 담은 서가
서가의 좋은 자리에는 해양 관련 책이 다양하게 꽂혀 있어 눈길을 당겼다. ‘해양전략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영국 해군 지배의 역사’ ‘서구해전사’ ‘러시아 해양력과 해양전략’ ‘보배섬 진도 설화’ ‘자청비 가믄장아기 백주또-제주 신화 그리고 여성’ ‘동해안 별신굿’ ‘동삼풍어제’ ‘미역인문학’ ‘NIMITZ(니미츠·영문판)’ ‘The Boat that Won the War’(전쟁을 승리로 이끈 보트·영문판) ‘Naval Power(해군력·영문판)…. 취재만 아니라면, 당장 뽑아 들고 열람실 창가에 앉아 읽고 싶은 바다의 책들이 넘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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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도서관 담당자가 서가에 꽂힌 책을 정리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
서영남 학예연구실장과 권유리 학술연구팀장이 나섰다. “우리 도서관에는 희귀·귀중본도 적지 않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옆에 있던 손 회장의 눈도 커졌다. “1952년 9월 1일 발행된 미국 시사·사진 잡지 ‘라이프(LIFE)’입니다. 표지인물이 누구인지 아시겠죠.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입니다. 이 잡지는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최초로 발표했던 바로 그 책입니다.“ 귀한 자료다. 그나저나 ‘라이프’는 1950년대에도 이렇게 세련된 편집을 했구나.
영국 해군 바실 홀이 1818년 펴낸 ‘조선항해기’도 있다. 홀 일행은 1816년 조선 백령도 근처 주민과 여러 차례 접촉했고, 조선어 낱말 28개를 영어로 소개했다. 이는 조선의 말을 서방에 알린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해양문학의 ‘넘사벽’ 작가 쥘 베른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펴낸 ‘경이의 여행’ 시리즈 다양한 판본, 1831년 영문판 ‘로빈슨 크루소’와 1894년 일본어판 ‘로빈슨 크루소도 흥미로웠다. 김수형 사서는 “이들 소장 자료는 훼손 우려 등이 있어 평소에는 내놓지 못하고 독서의 달 등에 행사가 있을 때 전시한다”고 설명했다.
김태만 관장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된 귀한 고서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조선 시대 나온 ‘구운몽’‘표해시말’ ‘조행일록‘ ’죽천이공행적록‘ ’해유록‘ 등이었다. 국립해양박물관에는 수장고가 9곳 있다고 한다.
■유일 본 많아 대출은 불가
“우리 해양도서관은 드문 해양 콘텐츠 전문 도서관입니다. 공간이 쾌적하고, 시민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개가식으로 운영한다는 점도 매력 요인이죠. 서가가 공개돼 있으니 편하게 책을 골라 볼 수 있지요.” 김 관장은 그다음 말을 강조하며 이용객에게 양해를 당부했다. “우리 도서관의 책은 유일 본이 많습니다. 한 번 훼손되거나 없어지면 되돌릴 수 없는 서적이 많다는 뜻인데요. 그래서 대출이 안 됩니다. 도서관 안에서는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검색 시스템도 잘 갖춰 놓았습니다.”
손 회장은 그간 써온 절영도 시조 30여 편을 김 관장에게 전달했다. 특유의 언어 감각이 다정하게 번득이는 작품들이었다. 손 회장이 회장인 영도문학회의 문학잡지 ‘영도문학’도 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 또한 해양문학 작품으로서 도서관 콘텐츠를 풍부하게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양도서관 ‘투어’를 마친 손 회장이 말했다. “영도에 참 오래 살고 있고 국립해양박물관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상세히 돌아보니 새로운 발견을 한 기분이다. 해양도서관은 공간도 훌륭하고 해양 관련 책이 많아 문학인에게도 큰 도움이 될 듯했다. 요즘은 사람들의 생활 형태가 다양해져 평일에도 도서관 나들이를 하는 분도 늘고 있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나 또한 그렇다. 더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을 발견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