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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수프와 이데올로기(양영희 감독)…식민지배와 제국주의 경계에 서다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2-11-09 18:44:0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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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계한 거장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 1930~2022)는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영화는 죽었다.” 이미지로 시간을 기록하는 예술인 영화가 정작 참극의 역사를 같은 시기에 담아내고 증언하질 못했다는 윤리적 실패에 대한 씁쓸한 자조일 것이다. 역사를 다루기로 하는 순간 영화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쉰들러 리스트’(1993)처럼 역사의 시공간을 세트로 재현하고 극화하는 방법. 아니면 인물 14명이 성장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7년 주기로 찾아가 찍은 다큐멘터리 ‘업’(1964~1998) 시리즈처럼 당장 눈앞의 시간을 담는 방법.

재현의 방법을 택하는 영화는 언제나 딜레마에 빠진다. 시간은 흐르고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죽었으며 흔적은 사라졌다. 아무리 치밀한 고증으로 사실성을 추구해도 결국 그것은 미학으로 포장되고 각본이 되도록 사실을 편집한 결과물이라는 비판을 견뎌내야 한다. 현실에서 날 것의 이미지를 길어 올리는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도덕적 문제에서 한결 자유로울 수 있다.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2022)는 다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정직함의 미덕을 구현해낸다. ‘디어 평양’(2006)이 재일조선인 아버지, ‘굿바이 평양’(2011)이 북송사업으로 북한에서 가정을 꾸린 오빠와 식구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어머니 강정희 여사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일제강점기 미군의 공습을 피해 제주에 살다가 다시 오사카로 와 가정을 꾸린 어머니 강정희 여사는 딸과 사윗감의 방문을 받는다. 평소 일본인과의 결혼은 극구 반대한 어머니는 예상과 달리 사윗감 아라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사위가 오면 씨암탉 잡는다’던 속담처럼 정성스럽게 닭백숙을 고아준다. 다 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정담과 웃음을 주고받는 모습은 식민지배와 제국주의 역사가 그어놓은 첨예한 경계도 가족이라는 영역에서는 조금이나마 너그러이 누그러질 수 있다는 작은 안도감을 준다.

제주 4·3 연구소 직원들이 어머니의 집을 방문하면서 초점은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옮겨간다.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질문에 증언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어둡다. 제주 4·3 사건의 참극과 그 와중에 이웃과 약혼자를 잃은 열여덟 살 기억은 노인이 되어서도 생생하다. 역사의 파란은 경험한 사람들을 죽였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지독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카메라는 한 개인에게 낙인처럼 새겨진 역사의 상흔(傷痕)을 억지로라도 억누른 듯 담담한 정조 속에 슬며시 비애감을 실어 전한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는 딸의 얼굴도 못 알아볼 만큼 기억을 잃어간다.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옛 모습을 담은 사진액자들도 치워진다. 이 장면은 시간의 불가역함 속에 지워져가는 기억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떠나도 영향은 남는다. 마치 닭백숙 고는 법을 배운 일본인 사위나 다 치우지 않고 남겨둔 사진액자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또 다시 ‘역사’라 부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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