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원 99명 중 유일한 외국인
- 2000년 9월 러시아서 한국행 비행기
- 인삿말 겨우 했는데 이젠 부산말 술술
# 가장 기억에 남는 지휘자 곽승
- 엄격하게 날 특훈 시킨 호랑이 선생님
- 온갖 살림살이 가져다줘 감동 받았죠
# 정년퇴직까지 남은 기간 3년
- 꾸준한 연습으로 끝까지 무대 설 것
2000년의 일이다. 러시아의 30대 청년은 ‘낯선 타국’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겨우 한글을 깨쳤다. 고작 간단한 숫자 읽는 법과 인사말 정도였다. 이젠 부산말이 더 친숙한 중년이 됐다. 부산시립교향악단 드미트리 로카렌코프(57) 수석 트럼페터의 이야기다. 올해로 부산시향 입단 23년차인 드미트리는 단원 99명 중 유일한 외국인이다. 러시아 그네신 음악대학 및 모스크바 주립 콘서바토리를 졸업한 드미트리는 국제 트럼펫 콩쿠르 3위에 입상했다. 이후 볼쇼이극장 트럼펫 수석, 말리 주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트럼펫 수석, 모스크바 심포니 트럼펫 수석 등을 역임했다.
■푸른 눈의 부산人: 모스크바의 이방인
 |
| 부산시립교향악단 드미트리 로카렌코프 수석 트럼페터가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야외 광장에서 트럼펫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여주연 기자 yeon@kookje.co.kr |
부산 남구 대연동 부산문화회관 내 부산시향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을 때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191㎝의 큰 키와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었다. “드미트리 선생님 한국말 잘 하세요”라는 시향 사무국 직원의 귀띔은 빈말이 아니었다. 입단일을 기억하느냐는 첫 질문에 망설임도 없이 “2000년 9월 13일”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답변에선 거침없고 솔직한 부산 사람의 분위기가 묻어났다.
2000년 부산시향에 입단한 이후 부인 김형주 씨와 만나 2006년 부산에서 가정을 꾸렸다. 부인도 음악가다. 슬하에 고교 1학년인 아들 아나톨리 군이 있다. 부산에서 터전을 가꾸는 사이 고향 모스크바에 있던 부모님과 형 모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드미트리의 국적은 여전히 러시아다. 부산 생활에 완전히 동화된 탓일까. 그는 “모스크바에 안 간지 6년이 넘었다. 겉모습만 보면 부산에서도 이방인이지만 이제는 모스크바에서도 이방인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외국인이지만 속은 완전히 부산 사람이다. “이젠 부산이 나의 집이자 고향이다. 다른 국가나 도시에 여행을 가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하는 드미트리는 ‘푸른 눈의 부산 사람’이다.
드미트리는 2000년 입단 전에도 공연을 위해 몇 차례 부산을 찾았다. 1994년, 1996년, 1999년이었다. 그는 “당시 해운대 조선비치호텔(현재 웨스틴조선부산호텔) 인근은 바닷가 시골 마을 느낌이었다. 지금은 해운대 서면 영도 다대포 모습이 각각 다르다.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긴 어렵다. 분명한 건 부산은 이제 나의 편안한 고향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호랑이 지휘자’ 곽승 기억에 남아
 |
| 젊은 시절의 드미트리 로카렌코프. |
드미트리는 역대 부산시향의 지휘자 가운데 곽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부산시향 제8대 지휘자 곽승은 1996년 1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악단을 이끌었다. 한 음도 소홀히 하지 않는 엄격한 지휘로 정평이 났다. 드미트리는 이 시절 난도가 높은 트럼펫 솔로곡을 거의 다 연주했다고 회상했다. 트럼펫 주자 출신인 곽승의 특훈이었다.
하지만 드미트리는 “정이 많은 분”이라고 곽승 지휘자를 회상했다. 그는 “입단 초기에 혼자 자취하던 시절이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곽승 선생님의 전화가 갑자기 걸려 왔다. 집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밖으로 가보니 선생님이 직접 침대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같은 살림살이를 들고 왔다. 깜짝 놀랐다.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
| 2019년 드미트리 로카렌코프(오른쪽)가 아내, 아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를 묻자 그는 “입단 직후부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중국 등 해외 연주 투어가 많았다. 중국 해외 연주 투어 당시 앵콜곡 ‘그리운 금강산’을 트럼펫 솔로곡으로 연주한 것”이라고 한다.
정년을 3년 남긴 트럼페터는 무대에서 내려오는 날까지 연습을 멈출 수 없는 운명이다. 트럼펫이라는 악기의 특성 때문이다.
트럼펫은 오케스트라 금관악기 가운데 가장 높은 음역대를 담당한다. 입술의 진동을 통해 소리를 내는 악기로, 세 개의 밸브를 이용해 다양한 음을 만들어 낸다. 그만큼 예민하고 다루기 까다롭다. 그는 “트럼펫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숨을 수 없다”면서 “슬프지만 정년이 3년 남았다. 정년까지 무대에서 계속 연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료들이 말하는 드미트리
- 자신의 역할 묵묵히…보물 같은 단원이죠
 |
| 2018년 국제신문 주최로 열린 ‘국제아카데미 14기 작은음악회’에서 드미트리 로카렌코프가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묵묵히 자신의 역할 그 이상을 해주면서도,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는 부산시향의 보물 같은 단원. 작품의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뚫고 나올 수 있는 찬란한 소리를 지닌 트럼페터.”(부산시향 최수열 예술감독)
부산시향 동료들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20년 넘게 드미트리 로카렌코프를 곁에서 지켜봤다. 또 하나의 가족인 그들의 눈에 비친 드미트리의 모습은 어떨까.
■조성철 플루트 상임단원
“제가 2000년 4월에 입단한 후 그 해 9월 드미트리가 입단했습니다. 드미트리와는 가까운 동네에 살아 카풀을 한동안 같이했었는데 매우 빠른 스피드와 마치 레이싱 같은 운전 솜씨에 놀랐었습니다. 역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운전도 리듬 있게 하는 베스트 드라이버였습니다. 드미트리와 함께한 아침 출근길은 대단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연습 때 늘 한결같은 아침 인사와 지금까지도 다정한 미소를 지닌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정서에 맞춰 예의도 있으시고요. 부산시향에서 퇴직하시는 날까지 드미트리 선생의 맑고 힘찬 트럼펫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정선화 트럼본 수석단원
“2000년 9월 러시아의 젊은 트럼페터가 부산시향에 입단했고, 그와의 첫 합주를 통해 악단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겠다는 걸 처음부터 직감했습니다. 이때부터 듀오 금관 5중주 금관 10중주 관악 합주 등 여러 앙상블로 현재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드미트리와는 2010년부터 특히 앙상블 연주를 함께 많이 했는데, 작년에 겪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드미트리가 탈장이 생겨 수술받아야 되는 상황이었고, 수술 하루 전날임에도 아픈 몸으로 2시간 동안 전혀 내색하지도 않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참 대단한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트럼펫은 호흡을 엄청나게 쓰는 악기이기 때문에 언제든 탈장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인데도 항상 연주를 먼저 생각하는 친구입니다. 악단에서는 프로보다 더 프로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멤버이자 항상 긍정적인 마음과 모든 걸 철저하게 준비하는 단원입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존경심까지 들 정도입니다. 저는 드미트리와 동갑내기인데 직장에서도 어느덧 세월이 흘러 왕고참의 위치에 있습니다. 항상 건강관리 잘하고 변함없이 부산시향의 위상을 더 높여주길 바랍니다. 파이팅!”
■박승훈 트럼펫 상임단원
“드미트리와 함께 부산시향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부산에 있었고 대학교와 유학 생활을 마치고 10년 만에 부산에 돌아왔습니다. 입단 후 그와 10년 동안 함께 연주하면서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때론 배우고 있습니다. 가끔 밥을 같이 먹을 때 한식을 너무 한국인처럼 먹거나 대화할 때 한국인만의 언어적 뉘앙스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때는 신기합니다. 트럼펫 파트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분이지만 악기 실력뿐만 아니라 성품도 좋아서 오케스트라 전체로서도 많은 단원이 믿고 음악적으로 의지하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