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 환경 보호를 위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생활방식. 제로 웨이스트 숍은 무포장 제품이나 자연친화적인 소재로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

전국 1호 녹색특화매장인 부산YWCA 생협 매장의 모습.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 생활 쓰레기 줄이는 아이템 판매
- 수영구 남천동 주택가 심플리파이
- YWCA 생협 운영 녹색특화매장
- 젊은 층서 유명한 천연제작소 등
- 부산에도 속속 문 열어 ‘입소문’

- 곡류 등 용기 가져와 리필하게 하고
- 플라스틱 프리·업사이클 제품 구비
- 포장 필요하면 생분해성 봉투 사용
- 제로 웨이스트 삶 입문하기 좋은 곳

배달의 전성시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온라인 장보기가 일상화됐다. 택배와 음식 배달이 늘면서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종이상자 등 쓰레기가 증가했다.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 생활 속 쓰레기를 줄이자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의 출발이었다. 텀블러 다회용 용기 장바구니 사용만으로도 쓰레기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최근엔 SNS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인증하고 공유하는 사람도 늘었다. 인스타그램에 ‘#제로웨이스트’를 검색하면 인증 게시물만 36만 개가 넘는다.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부산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국제신문은 부산녹색구매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제로 웨이스트 숍 3곳을 다녀왔다. 이 매장에서는 손님이 빈 용기를 갖고 오면 제품을 담아준다. 포장 용기와 비닐봉지도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다. 제로 웨이스트 제품을 사용하면 다소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가정에서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할 수 있다. 각자의 작은 노력이 모여 지구를 살린다.

■리필 스테이션, 1인 가구 안성맞춤

천연제작소에서 파는 친환경 화장품 ‘아로마티카’ 제품.

‘심플리파이, 심플리파이(simplify, simplify)’는 수영구 남천동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있다. 이곳은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초록색 영어간판 아래에는 쓰레기 없는 가게라고 적혀있다. ‘여긴 도대체 뭘 파는 가게일까’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심플리파이 김상원 대표는 “심플리파이는 미국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책 ‘월든’에 나오는 구절”이라며 “단순하고 간소하게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 편의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가 김 대표의 인생을 바꿨다. ‘알바트로스’였다. 이 영화는 미국의 작가 크리스 조던이 8년간 태평양 미드웨이섬에 머물면서 바닷새 알바트로스의 출생부터 죽음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은 것이다. “2019년 영화의전당에서 무료상영을 하길래 우연히 본 영화였다. 어미 새가 먹이인 줄 알고 물어다 준 플라스틱을 먹고 새끼가 서서히 죽어갔다. 죽은 새의 부패는 진행됐지만 뱃속 플라스틱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직도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후 김 대표는 직장을 그만두고 제로 웨이스트 숍을 창업했다. 매장 벽면 한쪽에는 알바트로스 사진이 붙어있다.

이곳은 천연수세미 대나무칫솔 고체치약 스테인리스 용기 소창수건 등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 제품을 갖췄다. 부산에서 생산한 업사이클링 수제비누 등도 판매한다. 빈 용기를 가져와 친환경 곡물이나 세탁·주방세제를 담아갈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도 있다. 김 대표는 “혼자 사는 직장인은 외식이 잦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횟수가 많지 않아 2㎏ 쌀을 사면 몇 달도 먹는다”며 “리필 스테이션에서 당일 먹을 만큼만 소량으로 구매할 수 있어 1인 가구에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씹는 고체 치약과 대나무 칫솔

심플리파이, 심플리파이 매장 내부의 친환경 곡물 리필 스테이션.

부산YWCA 생활협동조합은 지난해 환경부 인증 전국 1호 녹색특화매장으로 지정됐다. 녹색특화매장은 불필요한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친환경 유통 매장이다. 부산YWCA 생활협동조합 백성희 상무이사는 “초기에는 농민과 소비자가 친환경 물품을 직거래하는 매장으로 시작했다”며 “에너지·자원의 투입과 온실가스·오염물질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녹색제품뿐 아니라 플라스틱 없는 제품(플라스틱 프리), 대나무 제품 등 친환경 삶을 추구하는 제품을 판매한다”고 소개했다. 사과 감자 등 과일·농산물과 잡곡류 등은 포장재 없이 소분 판매하고, 세제와 잡곡 등은 리필도 가능하다. 포장이 필요한 경우에도 생분해성 비닐봉투나 종이 포장재를 이용한다.

고객층은 40~60대 주부. 주력상품은 유기농 쌀과 유정란이다. 백 상무이사는 “판매하는 메뚜기쌀(경남 산청 차황면 재배)은 훈증처리를 하지 않아 쌀이 수분을 머금고 있어 밥맛이 좋다. 최근에는 K-열풍을 타고 미국 수출길에 올랐다”면서 “1등급 유정란은 10알에 4900원인데 백화점에선 7000원대에 판매한다. 산지 직거래여서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해 부산 전역으로 물품을 배달한다. 3만 원 이상 구매 시 무료 배송이 가능하다. 제로 웨이스트 품목 중에서는 대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이 인기다. 보통 칫솔 교체 주기는 3개월이다. 나무는 플라스틱에 비해 습기에 약하지만 3개월 정도라면 문제 없다. 백 상무이사는 “고체치약을 입에 넣고 씹으면 거품이 난다. 알약 크기여서 휴대도 간편하다”고 말했다.

■폐우산 업사이클링 우산가방

천연제작소에서 판매하는 업사이클링 우산가방.

북구 덕천동 한 2층 주택에 자리 잡은 천연제작소 부산점은 부산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숍이다. 2020년 5월 부산점을 개업한 데 이어 지난해 8월에는 양산점을 오픈했다. 천연제작소 우지민 사장은 “이 자리에 천연화장품과 비누를 만드는 공방을 준비 중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면서 “대면 수업이 어려워지면서 당시 부산에는 없었던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운영하기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천연제작소는 SNS상에서 유명해지면서 20대 고객이 많은 편이다. 온라인 주문도 받는다. 택배상자는 기부받은 헌 상자를 활용한다. 6만 원 이상 사면 무료배송.

11종 곡물과 세제 리필 스테이션이 있다. 곡물은 1g 단위로 판매한다. 준비물은 깨끗하게 씻은 건조된 용기다. 용기에 물기가 남아있으면 소분이 불가하다. 주말 리필 스테이션 이용 시 20% 할인행사도 진행 중이다. 친환경 화장품 ‘아로마티카’의 제품도 갖췄다. 아로마티카는 화장품을 재활용 플라스틱과 재활용 유리병에 담아 판매한다. 또 버려지는 우산의 방수천을 활용해 만든 우산가방이 눈에 띈다. 우 사장의 어머니가 재봉틀로 직접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이다. 천연제작소에서는 우산의 기능을 할 수 없지만, 천이 깨끗한 우산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기부받고 있다. 자원순환을 위해 브리타 정수기 필터와 크레파스, 병뚜껑 수거함도 있다. 헌 크레파스는 재활용해 새 크레파스로 탄생한다. 일회용 생리대 대신 실리콘으로 만든 여성용품인 생리컵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곳에선 생리컵 샘플을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다.

우 사장은 “제로 웨이스트를 처음 시작하는 고객들이 ‘제로 웨이스트하려니 돈이 많이 들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일단 집에 있는 일회용품을 모두 사용한 뒤 제로 웨이스트 제품으로 바꾸길 추천한다”면서 “어차피 생활용품은 계속 사야 하는 품목이라 하나씩 교체하면 훨씬 진입장벽이 낮아진다”고 했다.


◇ 부산 제로웨이스트 상점 현황

①광안세탁소=수영구 민락로 33번길 5, 1층/월~금 오전 11시~오후 3시 영업(토·일 휴무)

②네모상점=연제구 신금로25, 227호/수~토 낮 12시~오후 6시(일· 월·화 휴무)

③마플상회=구 화명동 산성로 37-1, 2층/월~금 오전 10시~오후 6시(토·일 휴무)

④부산YWCA 생활협동조합=동구 중앙대로 298/월~금 오전 9시~오후 7시(토·일 휴무)

⑤쑥=수영구 장대골로 76, 1층/수~월 오전 10시30분~오후 6시30분(화 휴무)

⑥지구숲=북구 산성로 12번길 21, 13동 상가 A-2호/화~일 오전10시30분~오후 9시(월 휴무)

⑦코코아일랜드=부산진구 성지로 14번길 13/월~목 오전9시~오후 6시(금·토·일 휴무)

⑧천연제작소=북구 덕천1길 93, 2층/매일 오전9시~오후 7시(브레이크 타임 낮 12시~오후 1시, 명절·임시휴무는 공지)

⑨심플리파이, 심플리파이(simplify, simplify)=화~목 낮12시~오후8시, 금~일요일 낮12시~오후7시(월 휴무) 자료: 부산녹색구매지원센터


# “친환경, 이제 소비자가 주도…일상 속 실천 어려워 말고 수세미 하나 바꾸는 것부터”

■ 박숙경 부산녹색구매지원센터장

박숙경 부산녹색구매지원센터장이 소창 행주를 들어보이고 있다. 소창은 100% 목화솜으로 만든 천연 섬유다. 김미희 기자

박숙경 부산녹색구매지원센터장은 제로 웨이스트 문화가 확산되는 것에 ‘격세지감’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과거에는 환경운동이 계몽적인 차원이었다면, 이젠 친환경 소비를 소비자들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녹색구매지원센터는 지난해 부산 제로 웨이스트 숍과 녹색매장 지도를 만들었다. 현재 부산지역에 제로 웨이스트 숍만 9곳에 달한다.

박 센터장은 “지역 기업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추세”라고 말했다. 부산녹색구매지원센터는 부산테크노파크 한국수자원공사 부산권지사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친환경 소비문화 확산에 시너지를 내고 있다.

친환경 소비의 일상 속 실천은 어렵지 않다. 그는 “가정에서 널리 쓰는 플라스틱 수세미는 설거지할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이 그릇에 남는다”면서 거품도 잘나고 세정력도 좋은 천연 수세미로 바꾸길 제안했다.

부산녹색구매지원센터는 2013년 광역시 최초로 문을 열었다. 녹색구매지원센터는 녹색제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산을 비롯한 전국 8개 시·도에 설치돼 있다. 이 센터는 다양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시민에게 녹색제품을 알리는 민·관 협치 기구다. 시민의 친환경 소비생활 실천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